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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사회에 눈을 뜨게 한 책 (손봉호)
 관리자  | 2008·05·14 13:24 |
니버의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크게 속아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실패해본 사람은 그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적어도 100억 이상의 사람이 이 땅 위에 살았을 텐데 그 가운데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두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의식 세계란 얼마나 다양하고 신비스러운가.
  그러나 다른 한편, 사람의 의식 세계가 그렇게 불가사의한 것만은 아니다. 나쁜 정보가 계속 들어가면 그 생각이 깨끗해질 수 없고, 이슬람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불교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힘들다. 사람의 의식이란 물웅덩이와 같아서 어떤 정보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상당할 정도로 그 성격이 결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교육을 받으려 하고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어릴 때 비교적 엄격한 유교 가정에서 양육을 받았고, 그때 몸에 밴 유교적 가치관은 어른이 되고 기독교 신자가 된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감상적인 사춘기에는 나도 소설가나 시인이 되겠다고 문학 작품을 주로 읽었으나, 대학에 입학한 후 점점 이론적인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영문과에서 공부했으나, 소설이나 시보다는 영어학에 관심을 쏟았다.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해서는 그때 군대와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에 분노하여 사람의 마음을 뜯어고치지 않고는 학문도 무력하다는 것을 느껴 신학을 공부하러 미국에 갔다. 그러나 거기서 다시 몇 가지 이론적 갈등이 생겨 네덜란드에 가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 새로 시작하라면 아마 식물학을 공부하여 오염을 없애주는 식물을 개발하든지 태양 에너지를 활용하는 물리학을 공부할 것 같다. 나만큼 지적 방황을 많이 하고 여러 우물을 판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동안 여러 분야에서 배우고 생각한 것이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공헌했고 지금의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제목이나 저자를 다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책을 읽었다. 감명을 받은 책이 한두 권이 아니나, 20대에 나에게 지적 흥분을 일으킨 책은 네 권이었다. 보스(Gerhard Vos)의 「성경 신학(Biblical Theology)」, 레비나스(Immanuel Levinas)의 「전체성과 무한성(Totalite et infini)」, 키에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 그리고 니버(Reinhold Niebuhr)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등이었다. 앞의 두 책은 매우 이론적이고 난해하나 나머지 두 책은 이해하기가 비교적 쉽다. 이 책들은 모두 20대 후반에 읽었으나 인간과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을 상당할 정도로 바꾸어놓았다. 그 가운데서도 니버의 책은 나로 하여금 사회에 대하여, 특히 사회의 도덕성에 대해서 눈을 뜨게 했다.
  그 책은 사회학과 신학을 공부한 미국 친구로부터 소개받았다. 좀더 철저히 읽기 위하여 나는 박사 과정 부전공의 일부로 택한 신학윤리학 필독서로 그 책을 지정해달라고 담당 교수에게 요청하였다. 그 교수는 자기도 아직 읽지 않았으나 같이 읽겠다고 동의해주었다. 박사 과정 시험은 모두 구두로 이루어졌는데, 다른 책들에 대해서는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했으나 그 책에 대해서는 교수와의 토론으로 끝났다. 그 교수도 큰 감명을 받았고 그 책을 소개한 나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그 가치가 객관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미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신학자며, 1930년대에는 좌익이라고 오해받을 정도로 사회주의적이었다. 내가 읽고 감명을 받은 그 책도 1930년대에는 영국 기독교인들에게 좌경 서적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만큼 인간에 대해서 낙관적이지 못했고, 역사가 스스로 개혁될 것이라고 믿지 않을 만큼 어거스틴의 역사철학을 따랐다. 그가 본래 원했던 제목은 ‘비도덕적인 인간과 좀더 비도덕적인 사회’였다고 자신이 말한 바 있다. 그 제목이 너무 길어서 그저 ‘도덕적 인간관 비도덕적 사회’라고 줄였다 한다.
  내용은 책이름이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인간 개인은 양심, 이성, 체면, 상상력 등 도덕적 자원이 있어 도덕적이 될 가능성이 있으나 인간 집단은 도덕적이 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많은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개인에게 없는 악이 사회에 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이기욕이 사회 구조를 통하여 혹은 집단적 이기주의로 표출되는 것이다. 사회악은 개개인의 악의 위선적인 표출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그런 생각은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 뒤르켕 같은 사람들의 사상에서 이미 그런 요소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내가 마르크스를 알기 전에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호소력이 더 컸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니버는 그들의 생각을 윤리적으로 재해석하여 기독교 신학과 연결시켰고,자신의 생각을 쉽고 설득력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는 뛰어난 문장력을 행사했고 넓은 분야에 걸친 풍부한 지식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나는 니버의 모든 사상에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그 책은 나로 하여금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과는 다른 사회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과 특히 그것이 매우 위선적이고 비도덕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눈을 뜨게 했고,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내가 시민 운동에 뛰어들게 된 동기나 그 활동 전략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사회가 개인보다 더 비도덕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개인보다 사회가 인간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뜻한다. 나는 최근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2년 전에는 「고통받는 인간」이란 책도 썼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반성할 수 있으나, 고통에 대한 생각은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는 진정 할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시민 운동은 궁극적으로 사회를 조금이라도 도덕적으로 만들어 비도덕적인 사회가 사회의 약자들에게 가할 수 있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니버의 사상을 내 나름대로 이용한 것이다.

발췌 - 「울림・열림・어울림」 (철학과현실사) 중에서

손봉호 │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상임공동대표
동덕여대 총장
서울대 명예교수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서울문화포럼 대표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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