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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한층 더 성숙한 사회를 위한 새해의 간절한 소망
 관리자  | 2006·01·02 11:28 |
한층 더 성숙한 사회를 위한 새해의 간절한 소망

                                                                                             김경동 │ 상임공동대표,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학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또 한 해가 새로이 밝아오고 있다. 해가 바뀌면 누구나 자기의 삶에 나이를 한 살 더 보탠다. 사람이 나이를 더 먹으면 대개는 철이 더 들고 성숙해진다고들 한다. 반면에 나이가 아주 많이 들면서 오히려 더 어린아이와 같아진다고도 한다. 치매 현상일 수도 있고, 정말 어린이의 천진함을 되찾는 경지일 수도 있다. 개인이 그렇다면 사회나 세계는 어떨까를 생각해본다. 통상적으로는 역사가 흘러갈수록 인간의 사회는 더 발전하고 세계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한다고 믿는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수많은 지표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같이 대체로 외형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사회는 점점 더 각박하고 살기 힘들고 어지러워지는 면이 분명히 있다. 인류문명도 반드시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더 가치 있고 품격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키기는커녕 의외로 더 질이 떨어지고 악랄하며 위험해지게 한다는 점 또한 얼마든지 자료로써 뒷받침할 수 있다.

을유년(乙酉年) 한 해만 해도 그렇다. 온 세계가 천재지변과 인위적 난동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어버린 기억을 씻을 수가 없는 일 년이었다. 사상초유라 할 만큼 대규모의 지진해일이 덮쳐 동남아시아 열두 나라의 23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지도 한 돌이 지나갔건만 남아시아 지역은 지진으로, 미국 남부는 두 차례의 허리케인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런가 하면, 유럽의 주요 도시 런던에서는 폭발사고가 잇따랐고 파리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중동지역의 전쟁은 끝을 모르는 게릴라전으로 이어지고 크고 작은 정치경제적 폭동과 갈등은 지구 전체에 걸쳐 인류의 일상을 끊임없이 교란하고 있다. 이러고도 인간사회는 계속 발전하며 인류문명은 언제나 고도화한다고 큰소리를 쳐도 되는 지를 물어야만 할 것 같다.  

사실 인간의 삶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인류는 이전까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발명과 기술혁신을 시시각각으로 내어 놓으며 물질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급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중반경 자동차가 일상생활에서 보편화하기 시작하던 미국의 사회문화적 변동을 관찰한 사회학자 윌리엄 오그번(William Ogburn)의 문화지체(cultural lag) 이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기술개발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데 비하면 사회의 제도와 규범이나 인간의 가치관과 행동양식 등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과 같이 기술혁신의 속도가 가속적으로 빨라지는 시대에는 더욱더 심화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물질적인 생활의 변동이 아무리 현란하게 일어난다 해도 인간의 기본 가치나 사회적 규범과 제도의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론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인간은 그처럼 발달한 과학기술을 도리어 더 사악하고 저속한 목적에다 악용하여 세상을 더 도덕적으로 오염시키고 저질화시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거슬린다. 그 문화지체 현상 중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쪽은 정치의 후진성이다.

지난 을유년이 우리에게는 광복한지 만60년, 회갑을 맞았던 뜻 깊은 시점이었다. 지금이야 환갑은 청춘이라는 말까지 나돌지만 그래도 60년 전 우리사회에서 회갑을 지냈다면 장수한 셈이었고 크게 잔치를 벌였던 연륜이었다. 당시 우리의 물질적인 생활은 세계에서도 가장 빈한한 후진국의 형편에 불과했고 사회는 온갖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질서와 혼란이 판을 치던 시대다. 그 시절에 비할 때 오늘날 우리의 경제사정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에 이르렀고 물자가 너무 흔해서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삶을 누리게 되었다. 정말 대단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나무랄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음을 누가 감히 부인하랴 싶을 정도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의 가슴 한구석에서는 이게 과연 환갑을 지낸 철든 사회의 모습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운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돌이켜 보면 연초에 언론을 장식하던 화두에는 ‘혼란’과 ‘갈등’이 으뜸을 차지했던 것을 기억해내기가 어렵지 않다. 제발 금년에는 좀 갈등도 가라앉고 질서도 잡히는 안정된 사회에서 마음 편한 한 해를 보낼 수 있게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염원들이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 쏟아져 나왔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한 해를 마무리 하였다. 한데,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는 아직도 그 ‘혼란’과 ‘갈등’이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면서 더욱더 가중되고 증폭되었다 해도 누구 하나 아니라고 장담할 상황이 못 되는 게 현실이다. 일 년 전에 국민의 가슴을 짓누르던 위기감은 이제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다는 기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는 순간에 우리사회가 또 다시 나락의 구렁텅이로 추락할 지 불안한 마음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런데도 지금 만큼 안정되고 질서 잡힌 때가 없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 책임자들의 인식은 어디서 오는 자신감일 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마도 저들이 볼 때는 이 글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불안정 상태를 과장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우리사회의 비극이 있다.

당초 나라 일과 살림을 맡은 무리들이 성숙한 사람들이었더라면 이런 사태를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 자명해졌는데도 저들은 정신을 차려 차분히 현실을 직시하는 어른스런 자세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특정 목적을 달성하는 데 혈안이 되어 사회를 점점 더 어지럽고 불안하게 끌고 가는 모습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권에 대한 정치적 욕심, 시대착오적인 공허한 이념의 착시현상, 이미 실효를 상실해버린 과대망상의 도덕적 자기우월감, 한 번 손에 거머쥔 권력의 칼로 무엇이나 자를 수 있을 거라는 오도된 개혁의지,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조바심, 사회적 기반이 약한 파당의 배타적 이해관심, 협소한 연고로 엮인 도당의 개인적 출세욕, 과거의 핍박이 자아낸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가차 없는 단죄의식, 이런 저런 연유로 품게 된 한(恨)에서 우러나온 치졸한 복수심…!

오늘 우리국민은 거대한 전지구화(全地球化, globalization)의 거친 풍랑 속에 갈팡질팡 표류하는 작은 편주(片舟)를 탄 채, 이처럼 미성숙한 무리들이 펼치는 웃지 못 할 소극(笑劇, farce)을 바라보며 억지로 실소를 흘려야 하는 가엾은 관객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렇게 직설적으로 누구를, 개인이나 집단을, 비판하고 꼬집는 글쓰기를 별로 즐겨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이 자리를 빌러 그렇게라도 말하는 것은 우리의 모임이 성숙한 사회를 가꾸고자 하는 염원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작은 뜻이나마 집적(集積)하여 이 사회를 조금씩이라도 변화시켜 보려는 정성을 표상하는 하나의 시대적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미숙한 점은 자성하며 개선하려 하고 주위의 미성숙은 솔선으로써 바꾸는 데 보탬이 되려는 사람들의 수줍은 몸짓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거창한 이념이나 구호를 내세우지 않는 대신, 시대적 미숙함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철들어 보자고 외치려 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는 시간을 정의하여 말하기를, ‘시간이란 세 가지 모습의 현재’라 하였다. 현재의 기억으로서 과거, 현재의 경험으로서 현재, 그리고 현재의 기대로서 미래가 바로 시간의 세 얼굴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뜻은 과거의 노예가 되어 현재와 미래를 망치고자 함에 있지 않고, 현재의 경험에만 집착하면 지난날의 잘잘못과 허물과 미숙함을 망각하기 쉬우며, 미래의 기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몽상의 세월은 오늘의 삶을 헛되게 하기 십상이다. 올바른 시간관이야말로 사회가 성숙해가는 데 긴요한 요소라 할 것이다.
지난 한 해 우리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은 회원 여러분의 정성에 힘입어 새로운 몇 가지 시도를 한 바 있다. 비록 성과는 미미했으나 성숙사회 아카데미의 교육 프로그램 확산을 위한 노력도 있었다. ‘열린사회와 윤리’ 토론마당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세 번이나 개최하였다. 여름에는 마당극도 성황리에 다시 무대에 올렸다. 가을에는 청소년들과 대화를 나누는 아크로폴리스도 열어 보았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함께 시대적 과제인 사이버양심포럼에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모임의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하여 홈페이지 개량 작업도 잘 마쳤다. 회원들의 소그룹 모임도 열심히 진행하였다. 아직은 미흡한 점 많지만 하나 둘씩 개선의 발걸음을 띠어 온 것은 다행이라 여기며 여러분의 덕분이라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새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과거의 미숙함을 극복하고 조금이나마 더 성숙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올해에는 우리 모임의 활동에 동참하는 회원도 더 많이 늘어나고 더욱 뜻있는 활동도 계속 개발하여 우리사회가 성숙해지는 과정에 한 톨의 밀알이라도 씨를 뿌리는 해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본다. 새해는 개띠, 병술년(丙戌年)이다. 개는 도둑은 물론 잡귀와 액운을 물리쳐 집안의 행복을 지켜주는 길한 동물이라 한다. 제발 덕분에 올 한 해는 사회가 ‘개판’이 되어가는 안타까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진정으로 안정되고 평안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회원 여러분의 건승과 가정에 행운이 가득 하기를 축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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