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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종교의 자화상 (김용준)
 관리자  | 2008·09·18 13:31 |
  확실한 날짜는 기억되지 않지만 외국어대학의 이기상 교수님 주선으로 하이데거의 수제자라는 폐글러 교수 환영 리셉션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여러 가지의 절차가 끝난 다음에 페글러 교수가 답사를 할 차례가 됐다. 연단에 선 폐글러 교수의 첫마디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한국을 보러 왔습니다.”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폐글러 교수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는 작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모 종교학자가 오늘의 한국의 각 종교들의 정치화가 오늘의 종교간 알력을 가져왔다고 진단한 신문기사가 머리에 떠오른다. 종교의 정치화란 결국 종교의 타락을 뜻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내 머리에는 어려서부터 들은 제정일체(祭政一體)라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말이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녀서 80이 넘도록 교회문화 안에서 자랐다면 자란 나에게 젊어서 읽었던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는 지금도 나의 뇌리에 남아있는 생생한 불교상이다. 원효대사는 물론이지만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대안스님의 이야기는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분들이다.

  최근에 슬라보이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크리스천으로서의 지젝이 그리는 사도바울의 모습은 교회에서는 도저히 접할 수 없는 사도바울의 참모습을 보는 듯 하여 마음이 흐뭇하였다.

  지금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기독교의 모습에서도 불교의 자세에서도 바울과 원효와 같은 참 종교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야말로 오늘의 종교의 자화상이 아닐까?


글쓴이 :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저서>
『종교와 과학』2000/ 공저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2005
『내가 본 함석헌』200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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