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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로 올라갈까요?

 

 

 






94. 우생순 (박이문)
 관리자  | 2008·09·11 13:50 |
  나이가 많아지면서 시력, 청력, 기억력의 쇠퇴를 절감하고, 형님의 상을 치르고, 가까운 친구들의 영안실을 찾아야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리고 최근 어느 병실에서 자신의 죽음이라는 가장 절박한 실존적 문제와 직면하면서 나는 지난날의 삶을 뒤돌아보고 죽음과 삶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쩐지 부끄럽다.

  파스칼은 인간의 삶을 사슬에 묶인 채로 줄을 서서 죽음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의 상황에 비유했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뻔한 인간의 운명이지만 파스칼의 말은 인간조건의 탁월한 시적 은유이다. 만일 인생이 생물학적 생존을 의미하고, 생물학적 죽음이 그러한 생존의 마지막이라면 인생은 궁극적으로 허망하다.

  하지만 삶에의 집착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입으로는 아무리 다른 말을 해도,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다른 주장을 해도, 모든 사형수들은 사형대 바로 앞에서까지도 더 살려고 버둥대는 것이 정상적 인간의 정직한 실상이다.

  인생은 정말 무의미한가? 삶의 가치는 없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으며, 잘못 살아왔으면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살아야 시인 윤동주의 표현대로 “한 점의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 수” 있는가? 나는 아직도 아무런 확실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북경 올림픽 선수들의 경기, 특히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에 패배한 한국여자 핸드볼경기를 보면서 나는 그 대답을 ‘우생순’이라는 낱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낱말은 꼭 4년 전 아테네올림픽 경기장에서 덴마크와의 피를 말리는 치열하면서도 아슬아슬한 경기 끝에 금메달을 놓친 한국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제목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압축해서 만든 말이다.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결승전은 그녀들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충족감 즉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지상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들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핸드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금메달이라는 외재적 가치가 아니라 뛰어난 경기를 위한 최선의 노력, 그러한 노력에 동반되는 자기초월이라는 종교적 숭고한 정신의 고양된 경험자체에 존재하는 내면적 가치이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그러한 가치 이상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    

  인생을 핸드볼경기로 볼 수 있으며, 인생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모든 인간은 각자 자신의 꿈과 노력에 따라 자신의 삶을 나름대로 숭고한 우생순으로 고양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에 이미 늦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글쓴이 : 박이문
시몬스대학 및 포항공대 명예교수
연세대 특별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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