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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북경대학 정원에서 느낀 일 (김학주)
 관리자  | 2008·08·13 10:51 |
  몇 년 전 중국에 가서 북경대학 정원을 구경하다가 느꼈던 단상이다. 북경대학 교정의 미명호(未名湖)라는 아름다운 호숫가를 거닐다 보니 숲 속에 두 개의 묘가 있었다. 북경대 교수를 지냈고 북경대 안에 마르크스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던 리다자오(李大釗)와 신문기자로 중국을 여러 번 방문하며 글을 쓴 미국인 에드가 스노우(Adgar Snow)의 무덤이었다. 이 미국 사람의 무덤이 북경대학 교정 안에 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나는 그가 쓴 『중국의 붉은 별, Red Star Over China』과 『우리 편의 사람들, People on Our Side』이라는 두 책을 오래 전에 읽어 그는 일찍이 옌안(延安)으로 가서 마오쩌뚱(毛澤東)·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을 만나기도 한 중국통의 미국 신문사 기자라는 정도의 지식만을 갖고 있었다. 그의 무덤 앞에는 묘비가 있어 가까이 가 보니 “중국 인민의 친구” 아무개가 여기 잠들어있다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비문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년에 북경대학으로 와서 강의를 하다가 베이징에서 죽었다 해도 중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을 “중국 인민의 친구”라고 불러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자연히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중국 친구들이 많고 중국과 가깝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내가 죽은 뒤 중국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부를까? “인민의 친구”는 근처에도 갈 수가 없고 중국의 어떤 집단도 나를 “우리 친구”였다고 기억해줄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시원찮은 존재이니 제쳐둔다 하더라도 우리 한국 사람들 중에는 중국 사람들이 자기네 “인민의 친구”라고 불러줄만한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사람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고 착하면서도 특히 외국 사람들에 대하여는 배타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까운 이웃 나라 사람들에 대하여도 보통 일본의 경우에는 왜놈·쪽바리이고 중국에 대하여는 뙤놈·때국놈이라 부른다. 일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화교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독도나 고구려사 문제 등에 있어서 역사적 이성적인 판단보다도 감정적인 비평을 앞세우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국제적으로는 이웃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에드가 스노우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미국은 선진국이고 위대한 것 같다. 자리를 우리나라로 옮겨 보더라도 미국 사람들 중에는 “우리의 친구”라고 불러도 좋을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우리나라에 학교를 세워 한국 사람들 교육에 크게 이바지한 분들, 자기를 희생하면서 우리나라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 분들 같은 이들이 상당히 많다.

  다행히도 지금은 한국사람 중에도 자기를 희생하면서 외국 사람들을 돕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가 조금씩 더 성숙해가고 있는 징표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우리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위해주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도울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만 한다. 그래야만 세계화시대에 어울리는 성숙한 사회를 이루는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한국 사람들 중에도 외국 사람들이 “우리 인민의 친구”라고 불러줄 사람이 많이 나오게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 :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
연세대  특별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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