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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삶. 산다. 사라진다. (이영호)
 관리자  | 2008·08·01 11:04 |
  평생 나무 기르기로 수십억의 자산을 이루고 지금은 그 돈으로 사람 기르는 일로 노년을 보내는 어느 노인네의 인터뷰기사 중 잊어지지 않는 한 줄의 글이 있다. 인터뷰의 마지막 구절, <어떻게 그런 훌륭한 삶을 사실 수 있었느냐>는 기자의 끈질긴 물음에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체념한 듯이 내린 결론 겸 대답은 "내가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그렇게 살게 됐다”고. 노인은 겸양의 말로 했는지 모르겠으나, 이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 살다 보니 그렇게 … 살게 됐다>는 말. 70이 넘어 80 가까이 가 있는 나이에 자신의 평생을 뒤돌아보며 내린 결론이 이 말인 듯하다. 하나의 가감도 없이 잔가지를 다 쳐버리고 남은 큰 몸통 하나를 쥐고 흔들어 보니 내가 했다기 보다 그렇게 하게 됐다는 솔직 담백한 결어가 이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이겠다.

  <살게 됐다>는 표현은 <산다>는 동사의 피동형이다. 우리말에 피동의 모습이 분명치 않으나 구태여 <산다>의 피동형을 만들어 보면 <살아졌다>. 시제를 빼고 원형을 살리면 <살아진다>가 된다. <산다>는 <살아진다>가 된다. <살아진다>에서 내 생각은 <사라지다>로 한번 고개를 넘는다. 산다는 사라지다로 변신을 한다. 결국 사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산다는 것의 진정한 내용은 사라지는 것이지. 사라지는 과정이지, 다른 것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항상 현재를 과거로 만들어 가는 큰 흐름 속에 살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미래는? 미래는 현재에서만 구체적인 모습을 가진다. 미래는 부정형(不定形)이다. 미래는 구체적인 현실의 시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념의 한 틀이다. 미래를 현재에서 선취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존재의 탁월함이라는 현대철학의 주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다른 모든 생명체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런 능력을 타고 났다는 현대과학의 주장을 인정하고 나면 그것은 일종의 인간중심적 사고의 전형적인 오류라 하겠다.

  이 지점에서 내 생각은 한 번 더 고개를 넘는다. 제2차 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이 정치권력에 밀려 쫓겨나면서 미 국회에서 한 마지막 연설의 명구,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이라는 말에 도달한다. 죽음과 사라지다는 최소한 이 노병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모양이다. <사라지다>는 이 경우에도 죽음이 아니라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어 가고 있는 거다. 이 죽어가고 있는 흐름에서 사람들은 참 여러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 여러 모습 중에서 최소한 이런 모습은 좋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고전들이 있다. 공자의 <향원>의 무리들에 대한 비판, 사르트르의 현대인의 자기망실의 병증을 <타인의 시선>에 매몰된 중성적 인간군으로 진단함이 그것이고 하이데거가 자기 이름을 갖지 못하는 <그저 사람들>이라고 할 때 사람(man)과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지칭되는 실재하는 한 인간(mann)을 구분하고 본래적인 자기에로의 귀환을 요구함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의 운명에 대한 자각을 참된 삶의 기본으로 제시한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살아 움직이는 지금이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삶의 계기다. <산다>는 말이 <사라지다>라는 말과 의미연관과 사실연관을 갖는다는 통찰이 이뤄지면 그 때 <지금, 바로 여기>라는 시간계기가 핵심을 이루는 세계관, 인생관이 열린다. 이 열린 문턱에서 비로소 하루하루를 새로운 하루로 살아가는 생활(日新 日新 又日新)이 이뤄진다. 노예가 아니라 주인의 생활이다. 다른 뜻이겠으나 사도 바오로가 "나는 매일 죽는다."고 예수의 십자가와 연관해서 했다는 말도 어쩌면 이런 뜻이 아닐까. 이런 생활이 성숙돼 가는 삶의 모습이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지 말기를 바라며…….


글쓴이 : 이영호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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