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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보행(步行)의 속도 (김태길)
 관리자  | 2008·07·28 11:47 |
  첩첩산중에 고립해 있던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열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50호 안팎의 가난한 농가들이 모여서 살고 있었으나,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의 길조차 없어서 모두가 걸어서 산길을 다녔다. 보행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것이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고 어려서부터 산길을 걷는 가운데 다리힘이 요즈음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고, 보행의 속도도 따라서 매우 빨랐다.

  1986년 2월에 정년을 맞게 된 나는 30년 가까이 정들인 서울대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끼리의 관계로 지내기도 한 젊은 철학자 10여 명이, 석별(惜別)의 정을 달래기도 겸하여 1박2일의 예정으로 설악산에 나들이를 가자고 하였다.

  허름한 여관에 잠자리를 정하고 누웠다. 잠은 깊이 들지 않았고, 나 홀로 이른 아침에 밖으로 나왔다. 흔들바위 근방까지 갔다가 다른 친구들과의 아침식사에 늦지 않도록 돌아올 심산으로 빨리빨리 걸었다.

  아침 일찍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으나, 나처럼 70고개를 바라보도록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히 서두르는 기색 없이 보통 속도로 걸었다. 나만은 함께 나들이 온 친구들과의 회식에 늦지 않도록 빨리 걸었던 까닭에, 그들 보다는 월등하게 빠른 속도로 걷게 되었고 자연히 그들 모두를 앞지르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보행의 속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거주지가 분당이라는 이름의 위성도시이고, 이곳에는 공원이 많아서 매일같이 한 시간 가까이 걷는 습관을 갖게 되었으나, 그 속도가 말이 아니다. 나는 팔을 크게 휘두르며 기를 쓰고 걷지만 마음만 앞설 뿐 발은 조금씩 밖에 나가지 않는다.

  지금은 그래도 아주 딱할 정도로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이 90세가 가까워서, 이정도로 걷는다는 것도 매우 다행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다리의 힘이 줄다보면, 오래지 않아서 지팡이 없이 걷는 것조차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골똘히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한다.  


글쓴이 :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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