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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 ‘무관심’이 필요한 과민사회 - 이진우
 관리자  | 2022·06·28 10:11 |
유럽 대부분 지역이 40도를 넘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중국 남부에서는 기록적인 폭우로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났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기후변화가 초래한 재앙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각국이 제시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 목표치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지구 온도는 향후 10년간 1.5도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이 암울한 전망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기후변화는 사회적 불평등과 함께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최대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해 체스 챔피언의 이름을 아는가? 본래부터 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모를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짜증 내며 이렇게 내뱉을 것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알 바 아니잖아!" 게다가 고아가 체스 세계 챔피언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을 봤냐고 잘난 체하는 사람에겐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우리와 상관있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깊이 관여하고 상관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중요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관여할 필요가 없는데도 오지랖 넓게 간섭하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 어떤 일이 우리와 상관이 있고, 우리와 상관없는 일은 어떤 것인가? 상관없는 일에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깊이 상관함으로써 결국은 중요한 문제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아닌가?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과민사회'라는 인식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엇을 먹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누구와 친한지, 모든 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기분은 좋은지, 어떤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한다. 좋게 말하면, '정(情)'이 많은 사회고, 나쁘게 말하면 간섭과 참견을 좋아하는 사회다. '다정(多情)하다'는 낱말이 말해주듯이 우리에게 정이 많다는 것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정으로 얽혀있는 사회의 사람들은 대체로 흥분을 잘한다. 정이 많으면, 감정이 폭발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겐 '상관없다'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는다. '상관하지 마'는 '참견하지 마'로 들리고,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I do not care'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난 상관없어'이다. 독일어로는 'Es ist mir egal'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이 사태의 본질에 훨씬 가깝다. 상관없다는 뜻의 'egal'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평등', '동등(égalité)'의 낱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똑같이 중요하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식당에서 백포도주와 적포도주 중 어떤 것을 드시겠냐고 물을 때 '아무거나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든 똑같이 만족할 것이라는 뜻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무관심(indifference)'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서 지나친 관심이 결국 무관심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민감하고 과민하다는 것은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은 매우 이성적이어서 과도하게 촉발되거나 사용되면 무뎌지게 된다. 과민은 불감의 원인이고, 과도한 관심은 무관심을 가져온다. 스토아 철학은 이런 상황에서 삶의 방향과 균형을 잡으려면 '무관심'을 통해 내적인 평정에 도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예컨대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다 보면, 우리는 정작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과민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적 무관심'이다. '그건 나와 상관없어' 또는 '그건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무관심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가치가 분명할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이 질문 자체가 '무슨 상관이야'라는 대답을 들을까 두렵다.


글쓴이/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계간 『철학과현실』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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