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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자서전으로 본 김지하, 〈흰 그늘의 길〉 - 윤평중
 관리자  | 2022·06·21 12:28 |
보통 사람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평생 문맹(文盲)으로 살았던 농촌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우쳐 자신의 삶을 서툰 필체로 기록한 글엔 특별한 감흥이 있다. 이제야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된 이들이 남긴 글은 그 자체로 간난(艱難)의 시대를 증언한다. SNS의 중독성과 선정성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분분하지만 그 장점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사유의 조각들을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SNS의 글은 테크놀로지 차원에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며 '영원하다.' 내가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난 스토리가 풍부한 공인들을 만나면 반드시 회고록을 남기라고 권유한다. 역사란 곧 특정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무늬와 결이 모여져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합쳐져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이룬다. 전문적 역사 연구에서 미시사와 생활사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것과 같은 흐름이다. 중요한 공인들의 경우,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기는 것은 사회적인 의무라고까지 말 할 수 있다.

미국의 동네 도서관에 가보면 자서전 및 전기 서가가 따로 있으며 도서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인상적인 것은 유명인뿐 아니라 수많은 무명인들의 자서전이 임립(林立)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네들의 기록문화가 만만치 않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경우 변화가 있다고는 하나 공인들의 자서전 문화는 아직 척박하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솔직한 글을 남기는 게 나중에 정치적 화근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화(筆禍)에 대한 두려움은 조선 왕조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회고록이 활성화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중요한 공인일수록 자신이 만난 동시대인들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나 체면을 중시하는 연고주의적 집단주의가 강하게 남아있는 한국문화에서는 지인이나 동료, 선후배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공개적인 글로 남기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인간관계 파탄까지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진솔한 자서전이 드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큰 정치인'인 이유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불우한 출생 배경을 있는 그대로 밝히면서 어려움을 승화시킨 거대한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대필 된 자서전은 대부분 종이 낭비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시인 김지하도 세 권으로 이루어진 독보적인 회고록 〈흰 그늘의 길〉을 남겼다. 책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내용이 풍부하다. 김지하 회고록과 비슷하게 풍성하면서 개인의 삶이 한국 현대사의 명암과 긴밀하게 교차하는 드문 자서전으로는 고(故) 강원용 목사의 5권짜리 회고록 〈역사의 언덕에서〉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김지하에 대해 이런저런 논란이 많은데 그의 삶과 한국 현대사를 균형 있게 이해하려면 〈흰 그늘의 길〉을 읽는 것이 필수적이다.

도합 346개 절로 구성된 〈흰 그늘의 길〉엔 수많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히 한국 현대사의 압축도라고 할 수 있다. 저항시 '5적'으로 필명을 날린 청년 김지하의 에고(Ego)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자신의 역사적 상대로 여길 정도였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된다. 〈흰 그늘의 길〉에서 개인의 삶과 한국 현대사의 접점을 웅변하는 두 인물의 사례만 간단히 살펴보면, 김지하 자서전의 한 절은 부산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전두환 5공 정권인 80년대에 가족과 함께 월북한 윤노빈 교수를 다룬다.

김지하와 원주중학교 동창인 윤노빈은 월북 직전 원주의 김지하를 찾아와 단칸방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지만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새벽에 김지하를 떠난다. 나중에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 김지하는 윤노빈이 왜 월북했을지 이리저리 궁리해본다. 윤노빈은 〈新生철학〉이라는 문제작을 남겼는데, 나는 졸저 〈국가의 철학〉의 모티브가 된 2016년 '석학인문강연'에서 윤노빈을 다룬 바 있다.(〈국가의 철학〉, 256~257쪽) 내가 보기에 윤노빈 교수는 메시아적 민족주의에 함몰돼 남북한 국가이성의 엄중함을 외면함으로써 지적 파산 상태에 빠진 인물이다. 동서 사상을 두루 섭렵한 윤노빈이 월북 후 대남 선전방송 기구인 북한 칠보산 연락소에서 일했다는 송두율 교수의 전언(傳言)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한 지식인의 처연한 운명을 증언한다.

김지하 회고록에서 내가 만난 또 한 사람이 청산 선사다. 청산은 '민족 고유의 수련법' 국선도를 맨 처음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김지하는 청산을 전두환 5공 정권 때인 1980년 초 형무소 복도에서 심문 순서를 기다리다가 조우해 서로 얘기를 나눈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같은 해 12월 전두환 보안사령부가 실권을 장악한 직후의 일이다. 차근차근 친위 쿠데타를 준비해가면서 정치권 인사들의 동향을 감시하던 보안사 안테나에 뜬금없이 청산 일당이 걸려든다. 청산은 쿠데타 음모를 의심받아 보안사에서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80년 '5월 광주' 전후 이른바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이 예비 검속되거나 자택 연금되고 김지하를 비롯해 시민사회에 대한 대대적 탄압이 진행되던 엄혹한 시절의 일이다.

깊은 산속에서 수십 년간 수련 끝에 하산 후 세상에 민족 고유의 수련법을 펴나가던 청산에게 어떤 정치적 흑막이 있었을 리 없다. '보안사에서 진짜 혼났다'고 김지하에게 토로한 청산은 방면된 후 1984년에 다시 '입산'한 것으로 국선도 자료에 나온다. 하지만 난 청산이 도가 수련의 궁극 목표인 우화등선(羽化登仙)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청산은 한국 현대사에서 비밀리에 전승되던 한민족 고유의 수련법을 맨 처음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청산은 중국 도가 전통과 차별화하려는 한반도 도가 수련(단학丹學?)의 원조(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인인 청산의 '사상'에서 나는 4세기 '포박자'까지 소급되는 중국 도가 전통과 근본적으로 다른 한국 단학의 독창성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청산의 비판적 역사의식 결여를 나는 흥미롭게 생각하는데,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자폐적 특징은 위대한 한민족의 상고사 담론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지금도 자료를 찾아보면 1960~70년대에 젊은 청산이 일본 후지 TV에 출연해 온갖 신기(神技)를 펴는 영상자료가 엄존한다.

'민족 고유의 철학사상'에 대해 김지하도 말년에 깊이 신비주의에 가깝게 침잠하게 된다. 김지하의 텍스트를 읽어보면 그는 결국 영성(靈性)의 시인이었지 논리 정연한 사상을 전개하는 철학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흰 그늘의 길〉을 읽으면서 우리는 김지하의 박람강기와 특유의 언변을 통한 한국 현대사의 본류를 추체험할 수 있고 그 이면의 오솔길까지 답사할 수 있다. 〈흰 그늘의 길〉은 김지하의 시 못지않게 매력적인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총천연색으로 증언하는 빛나는 글의 벽화라고 할 수 있다.

작가 김지하는 우리 역사의 거대폭력과 온몸으로 싸우다가 회복 불능의 상처를 일신(一身)과 영혼에 입고 말았다. 김지하의 삶은 내내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나 그는 그 고통을 감내할 뿐이었다. 김지하는 한 시대를 풍미한 시와 함께 멋진 회고록을 남겼다. 김지하 앞에서 '변절' 시비 운운하는 일각의 행태보다 유치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흰 그늘의 길〉이 증언한다. 영원한 저항시인 김지하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한다. 그것이 바로 글의 힘이다.


글쓴이 / 윤평중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계간『철학과현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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