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꼭대기로 올라갈까요?

 

 

 






786.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이택호
 관리자  | 2022·05·17 10:45 |
오월은 걷기가 제격인 시절이다. 매일 숲속 외딴길을 걸으며, 걸으며 내 생각은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된다. 두 발은 땅을 걷지만 내 마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을 만난다. 그뿐만 아니라 두 발로 사유하며 자유를 만끽했던 많은 사람을 만난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걷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말해주는 프랑스 철학자 프레드리크 그로(Frédéric Gros)를 만난다. 그는 자신의 저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재형 옮김, 책세상, 2014.4)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걷다 보면 어떤 사람이 되어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싶다는 유혹을, 하나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된다.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를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의 초상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속박하는 사회적 의무가 아닐까?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어리석은 거짓이 아닐까?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걸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다."(p. 17)

걷기를 통해 자유를 추구했던 많은 위인도 만날 수 있다. 끔찍한 두통에 대한 치유책으로 많이, 그리고 멀리 걸으며, 깊은 고독에 빠지기로 했던 니체도 만난다. "겨우 몇 줄만 빼놓고 전부가 다 길을 걷는 도중에 생각났으며, 여섯 권의 공책에 연필로 휘갈겨 썼다네."(p. 31)

루소는 자기가 걸어야만 정말로 생각하고 구성하고 창조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나는 산책할 때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전원은 나의 사무실이다. 책상과 종이, 책만 봐도 지겨워진다. 작업 도구는 나를 의기소침하게 한다. 뭘 좀 써보려고 의자에 앉아도 도대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p. 101)

'쾨니히스베르크의 시계'라고 불린 칸트도 두 발로 걸으며 사유했던 철학자이다. "걷는다는 것은 항상 똑같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조로움의 비밀은 바로 권태에 대한 치료제라는 사실이다."(p. 226)

"노력과 반복되는 작은 행위와 훈련이 굉장한 것을 만들어낸다. …. 훈련이란, 곧 가능하다고 믿는 집요한 반복으로 정복된 불가능이다. …. 산책을 떠난다는 것은 자기 일과 작별하는 것이다. 책과 서류를 그냥 놓아두고 나가는 것이다. 일단 밖으로 나가면 걷는 사람의 몸은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가고, 정신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즉 한가하다고 느낀다."(pp. 227~237)

이 밖에도 소요학파, 견유학파, 프로스트, 간디, 랭보, 월든, 성지를 순례하는 성인들 등 걷기를 통하여 자유를 추구했던 위인들과의 만남도 가능하다.

필자는 매일 2시간씩 일산의 '배다리 누리길'을 걷는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오솔길을 만들어 걷는다. 노래도 부르고 시도 암송한다. 갈림길에 서서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는 길(The Road Not Taken)〉을 구수하게 읊는다. "그날 아침 두 길은 아직 밟혀서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네! 길은 연하여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로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사람마다 사뭇 달라도 어디에선가 통과하는 지점은 반드시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길목을 통과해야 한다.

나는 그때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을 노래할 것이다.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매일 숲속 외딴길을 걸으며, 걸으며 내 생각은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될 수 있었다.


글쓴이 / 이택호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798   798. 황제와 노예~ ‘좋은 삶’에 대한 작은 명상 - 윤평중 22·08·09 24
797   797. 자아의 인식 - 엄정식 22·08·02 29
796   796. "삐딱한" 지식인 - 손봉호 22·07·26 36
795   795. 집 안 싸움 - 김도식 22·07·19 43
794   794. 정년 이후 노년의 삶에 대하여 - 김기봉 22·07·12 77
793   793. 더닝 크루거 효과 - 이택호 22·07·05 35
792   792. ‘무관심’이 필요한 과민사회 - 이진우 22·06·28 35
791   791. 자서전으로 본 김지하, 〈흰 그늘의 길〉 - 윤평중 22·06·21 68
790   790. '손흥민'이라는 현상 - 엄정식 22·06·14 42
789   789. “거룩한” 확신 - 손봉호 22·06·07 48
788   788. 신경 써야 할 것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 김도식 22·05·31 36
787   787.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김기봉 22·05·24 78
  786.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이택호 22·05·17 40
785   785. 페이크 워크 - 이진우 22·05·10 49
784   784.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 윤평중 22·05·03 58
783   783. 불편과 불행, 그리고 자유 - 엄정식 22·04·26 52
782   782. 소극적 공리주의 - 손봉호 22·04·19 61
781   781. 실력이 보상받는 공정한 사회 - 김도식 22·04·12 51
780   780. 죽음과 <천개의 바람> - 김기봉 22·04·05 146
779   779. 신(神)은 존재하는가? - 권병규 22·03·29 380
1234567891040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