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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 페이크 워크 - 이진우
 관리자  | 2022·05·10 13:12 |
“은퇴 생활의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정년퇴임 후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대개 스스로 답을 내놓곤 한다. “여전히 바쁘시지요.” 당혹스럽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기대하지 않은 답까지 덤으로 받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한다. 뭐가 좋지? 이 질문은 현대사회의 특성을 반영한다. 일과 노동이 종교를 대체한 현대사회에서 일한다는 것은 당연한 규범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일할 수 없는 은퇴자 신분이라도 뭔가를 해서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 이 질문에 숨어있다.

직장에 있을 때는 사실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너무 길어 절망적일 때도 있었다.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일들을 연이어 처리하지만, 일이 끝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에 치어 살다 보면 일의 의미를 잊게 된다. 도대체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한 거지? 그 일이 꼭 필요했던 것일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 것은 아닐까? 가족 여행을 떠나자고 할 때, 아이들이 주말에 야구장 가자고 조를 때, 친구들이 오랜만에 얼굴 보자고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이 일만 마치고 나서.” 그런데 내게 여행과 휴식을 허용할 그 일의 끝은 없었던 같다.

이런 일로부터 해방된 은퇴 생활은 분명 ‘자유’ 생활이어야 한다.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아니면 할 일이 없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나는 드라마를 즐겨 본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한국 정치 현실에 짜증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는 종종 삶의 흐름을 잘 읽어낸다. 노른자위 서울을 둘러싼 흰자위 같은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 미정이 구 씨에게 건네는 매우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하듯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그렇게 하루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미래가 창창한 젊은 청년이 “80년 인생을 8년으로 압축해 살아도 하나 아쉬울 거 없을 거 같다.”라고 고백한다. 일도 삶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노동이 사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서 영혼을 짜내는 고욕이 되었다. 우리는 직장에서 종종 의미 없는 일들을 처리한다.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회의’, ‘야근’, ‘회식’은 노동 자체를 더욱 고되게 만든다. 노동은 하는데,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를 소몰이하듯 자신을 끌고 간다. 우리는 이런 노동을 ‘가짜 노동’, 즉 ‘페이크 워크(fake work)’라고 부른다. 노동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어떤 이익도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낄 때, 우리는 가짜 노동을 한다. 그것은 직장에도 또 개인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페이크 워크’는 일종의 기만행위이다.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만은 대부분 자기기만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열심히 일할 때, 이러한 자기기만이 발생한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직장에서 인정받아 승진하고, 일 자체가 좋다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를 정당화하지만, 목적 없는 노동은 우리를 결국 소진시킨다. ‘번아웃(burnout)’이 그 필연적 결과다.

왜 우리는 ‘페이크 워크’의 덫에 걸린 것일까?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논리가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킨다는 마르크스의 설명은 너무 포괄적이라서 와닿지 않는다. 물론 후기 자본주의가 지식 노동과 서비스 노동을 구별하고, 너무 많은 ‘쓰레기 일자리(Bullshit-Jobs)’를 생산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페이크 워크’는 어쩌면 오늘날 노동의 형식 자체가 바뀌어 ‘노동 시간’과 ‘자유 시간’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노동을 단지 자유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면, 우리는 자유로운 여가에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사회의 정보화가 진행하면서 우리는 집에서도 일하고, 휴가 가서도 일에 매달린다. 우리가 업무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우리를 따라 다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우리는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단지 노동하는 것처럼 꾸밀 수도 있다.

‘페이크 워크’는 가상, 꾸밈, 위장과 연관이 있다. 페이크를 말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진짜를 전제해야 한다. 그런데 진정한 삶은 노동이 끝날 때 비로소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결코 진짜 삶을 발견하지 못한다. 노동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의 필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 자체에서 진짜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노동이 무엇인지, 진짜 노동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채찍질하며 몰고 가는 소도 때로는 풀밭에 누워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우리는 노동의 의미를 음미해야 한다.


글쓴이/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계간 『철학과현실』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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