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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 윤평중
 관리자  | 2022·05·03 11:27 |
'경로우대'(65세 이상)를 받아 무료입장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들어가는 길은 화려한 꽃들이 가득했다. 역사관은 잘 정리되어있었고 평일임에도 가족 단위로 온 관람객들이 많았다. 뛰어놀기 좋아하는 어린아이들도 서대문형무소가 지닌 역사의 무게 앞에 조용히 부모의 설명을 경청하는 분위기다. 역사의 무게 앞에 저절로 숙연해지는 것이리라.

역사관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사형장이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1987년 서울구치소 이전(移轉)까지 실제 사형이 집행되었던 건물이다. 박정희 前 대통령을 시해했던 김재규 前 중앙정보부장도 1980년 5월 이곳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는 혁신계인 민족일보 간부로 체포되어 복역했던 양수정 작가의 책 제목이다. '내가 지켜본 사형장 2년 7개월’이란 책의 부제가 모든 걸 말해준다. 양수정에 의하면 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들은 십인십색의 반응을 보인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형집행은 사형수에게 사전 통고 없이 불시에 이뤄진다. 이른 아침에 이루어지는 '이감'이라는 간수의 명령으로 감방을 나선 사형수들은 곧 행정동이나 일반 옥사(獄舍)로 가는 길과, 사형장으로 가는 길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이 갈리는 길이다. 서대문형무소 안에서도 가장 삼엄한 분기점이었을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울부짖으며 간수를 뿌리치려는 이들도 있다. 얼굴이 백지장같이 하얘져서 넋이 나가는 이들도 있다. 질질 끌려가는 이도 있고 체념해 순순히 따라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형장 건물 앞에 선 사형수들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양수정의 이야기이다. 처형장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사형수들은 한결같이 '하늘을 한번 보고 땅을 한번 보더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양수정의 이 전언(傳言)을 궁금해하던 나는 사형장 건물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하늘을 보고 땅을 보았는지를. 서대문형무소 맨 구석에 있는 사형장은 재소자들 시선에서 건물 전체를 가리기 위해 6m에 이르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형장 지붕보다 담이 더 높아서 형장 바깥에서는 처형장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구조다.

사형장 담장 안에서 보이는 하늘은 마치 한 뼘처럼 작았다. 자신의 삶과 이어져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과도 이어져 있는 이 세상의 하늘과 땅을 사형수는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후 사형대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금 살아서 화사한 봄을 누리고 있는 우리가 그 순간 사형수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쟁에서 승리해 로마 시민들의 환호 속에서 개선식을 거행하는 장군의 전차에 노예를 동승케 해 계속 '메멘토 모리'(당신도 죽는다)를 외치게 한 것은 로마인들의 지혜였다. 영광의 절정기에 선 권력자에게 모든 세상적인 것의 덧없음을 환기시키려 한 것이다. 그럼에도 로마의 역사는 불나방 같은 인간들의 야심과 욕망, 배신과 음모가 만든 희·비극으로 가득하다. 로마 제국도 사라지고 서로 간에 그렇게도 맹렬히 지지고 볶은 그 모든 로마인들도 다 죽었다.

소용돌이의 정치가 모든 상식과 균형을 빨아들이는 대통령 선거가 끝났음에도 한국사회의 소란과 다툼은 끝날지를 모른다. 사마천이 2천 년 전에 명료한 언어로 밝혀 놓았듯이 우리 모두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즐겁게 오고가는 것은 모두 이익 때문이고, 세상 사람들이 어지럽게 오고 가는 것도 모두 이익때문이다." (天下熙熙 皆爲利來, 天下壞壞 皆爲利往)[사기 화식열전].

그럼에도 아주 가끔은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 땅도 한번 바라볼 일이다.


글쓴이 / 윤평중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계간『철학과현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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