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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 불편과 불행, 그리고 자유 - 엄정식
 관리자  | 2022·04·26 11:00 |
유엔에서 1992년 12월 3일을 '국제 장애인의 날'로 정하여, 세계 각국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4월 20일은 1981년에 우리나라에서 제정한 '장애인의 날'이다. 이러한 날들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의 불편과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돕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장애를 극복하고 인류 문화의 창달에 놀라운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인물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이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장애인 이동권 대책이 미흡하다며, 지하철 탑승 시위를 다시 시작해 출근길 혼잡이 빚어졌다. 지난 21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수위가 끝내 공식적인 답변을 주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휠체어 등에 오른 단체 회원들은 직접 지하철을 탑승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시민에게 알렸다. 박 대표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지속해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매일 경복궁역에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수차례에 걸쳐 "시민 출근 불모로 한 시위를 중단하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비문명적 연좌를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시위 방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이 땅에서 고통받는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존중과 특별한 배려가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돕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의 문제를 더욱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육체적 불편함이나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사회적 제도의 개선이라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공유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장애를 딛고 자유의 한계를 극복한 인물들의 족적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의 역사〉로 잘 알려진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1세에 '루게릭병' 선고를 받고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하였다. 43세에는 폐렴으로 기관절개술을 받고 목소리를 완전히 잃자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온 정신을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데 쏟아부었고, "우주의 시공간이 빅뱅으로 탄생해서 블랙홀로 사라진다"는 이론을 폈다. 후에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일 뿐만 아니라 뱉어내기도 한다"는 '호킹 복사 이론'을 제안해 물리학계에 큰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호킹은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발밑을 내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라"며 이렇게 역설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표준적인 인류라는 것은 없지만, 모두 똑같은 인간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이 정신을 극대화함으로써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낼 수 있었고, 비록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만은 자유로웠으며, 그런 의미로 결코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째 되던 때 뇌척수막염을 심하게 앓았다. 그 후유증으로 청각과 시각을 잃었고, 이로 인해 언어장애를 겪는다. 그러나 6살 때 손바닥에 글씨 쓰는 방식으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10살 때는 목의 진동과 입의 모양을 만지며 느끼는 방법으로 발성법도 배우게 되었다. 그는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사회운동에도 뛰어들었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정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냉소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사회적으로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것이 더 심각한 병"이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고 88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아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불편하지만 행복할 수도 있는 삶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자기는 잘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해냄으로써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 방식은 어떤 것인지 함께 진지하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글쓴이 / 엄정식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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