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꼭대기로 올라갈까요?

 

 

 






781. 실력이 보상받는 공정한 사회 - 김도식
 관리자  | 2022·04·12 13:43 |
미식축구팀 버펄로 빌스(Buffalo Bills)의 공격수인 스테판 딕스(Stephon Diggs)가 4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연봉이 평균 약 2,6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30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수준의 연봉이기는 하지만, 필자의 눈에 띈 것은 사실 다른 부분이었다.

딕스가 자기 부인과 딸을 데리고 함께 계약서에 서명하러 간 자리에는 버펄로 빌스의 단장과 감독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계약서에 서명하는 당사자와 그의 가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를 맞이한 단장과 감독도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고 딕스와 포옹을 하며 축하해 주었다. 사실, 단장이나 감독은 계약당사자인 선수보다 훨씬 적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지만 이에 대한 시기나 질투는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앞으로 계속 같은 팀의 일원으로 함께 하게 된 사실을 환영하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이 장면을 말로 서술하기는 참 어렵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마음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다. 계약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도 그의 계약을 진정으로 함께 기뻐했기 때문이다.

사실 딕스의 계약은 아직 2년이나 남아 있는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지금 당장 재계약이 필요한 시점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같은 포지션의 공격수인 디반테 애덤스(Devante Adams)와 타이릭 힐(Tyreek Hill)이 연봉 2,500만 달러가 넘은 계약을 체결하자, 버펄로팀에서도 이들과 비슷한 공헌을 하고 있는 딕스에게 남은 2년 계약 기간에 추가로 4년 계약을 제공한 것이다. 자기 팀에서 중요한 선수가 다른 선수의 계약을 보고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그의 실력에 맞는 보상을 해준 셈이다.

혹자는 이번 연장 계약으로 딕스의 계약 기간이 6년이나 남아서 먹튀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를 할 수 있다. 즉 그가 받게 될 연봉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충분히 큰 액수이기에, 연봉만 챙기고 실적은 현저하게 떨어져서 구단이 손해를 보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식축구에서 구단과 선수가 합의한 노동 계약에 따르면, 구단에서 선수의 능력이 연봉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그 계약을 파기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번 계약에서 딕스가 서명한 연봉 2,600만 달러가 모두 보장된 금액이 아니라, 계약을 체결할 때 받는 금액이 얼마이고, 매년 기본급이 얼마이며, 선수가 훈련에 참여할 때의 보너스가 얼마, 매 시즌 팀의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을 때 보너스가 얼마, 선수의 실적이 올라갈 때마다 추가 보너스가 얼마,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되면 받는 보너스가 얼마 등과 같은 방식으로 연봉이 세밀하게 계단식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수가 먹튀의 기운이 보이면, 구단에서 계약을 파기하여 계약금과 당해연도의 기본급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의 지급을 중지할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이런 연봉의 구조는 구단의 입장에서는 선수의 실력에 상응하는 대우를 마음껏 해주면서도 동시에 선수의 동기 부여가 감소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구단과 선수가 모두 서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구단은 선수의 먹튀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선수의 처지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수록 더 많이 보상받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딕스의 재계약을 보며, 두 가지 측면에서 배울 점을 발견했다. 하나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그를 진정으로 축복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의 인품이고, 다른 하나는 실력을 충분히 보상하면서도 보상받는 사람의 동기 부여가 축소되지 않도록 마련된 사회의 제도적 장치였다. 이 두 가지가 갖추어진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우리나라도 좀 더 이상적인 세상에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쓴이 / 김도식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792   792. ‘무관심’이 필요한 과민사회 - 이진우 22·06·28 23
791   791. 자서전으로 본 김지하, 〈흰 그늘의 길〉 - 윤평중 22·06·21 56
790   790. '손흥민'이라는 현상 - 엄정식 22·06·14 34
789   789. “거룩한” 확신 - 손봉호 22·06·07 38
788   788. 신경 써야 할 것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 김도식 22·05·31 29
787   787.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김기봉 22·05·24 66
786   786.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이택호 22·05·17 34
785   785. 페이크 워크 - 이진우 22·05·10 44
784   784.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 윤평중 22·05·03 52
783   783. 불편과 불행, 그리고 자유 - 엄정식 22·04·26 48
782   782. 소극적 공리주의 - 손봉호 22·04·19 54
  781. 실력이 보상받는 공정한 사회 - 김도식 22·04·12 46
780   780. 죽음과 <천개의 바람> - 김기봉 22·04·05 141
779   779. 신(神)은 존재하는가? - 권병규 22·03·29 362
778   778.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이 통하는 현실 - 이택호 22·03·22 59
777   777. 이제는 ‘악수’를 할 시간 - 이진우 22·03·15 18
776   776. 철학자와 현실정치 - 윤평중 22·03·08 65
775   775. 거짓말에 관하여 - 엄정식 22·02·28 55
774   774. 교육수준과 환경문제 - 손봉호 22·02·22 78
773   773. 실력을 감추어야 하는 사회 - 김도식 22·02·15 43
1234567891040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