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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 죽음과 <천개의 바람> - 김기봉
 관리자  | 2022·04·05 12:56 |
15년 전 아내가 갓 태어난 고양이를 길에서 만나 그냥 두면 죽을 거 같아 집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그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이젠 거기 사람이 된 딸을 대신해서 고양이는 아내의 아들처럼 살았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아파트 주변의 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캣맘'이 되었다. 아내는 입양한 고양이에게 독일어로 사내아이를 지칭하는 '융에(Junge)'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융에'가 2년쯤 같이 사는 동안 그만 혼자인 게 너무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아내는 다른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다. '융에'는 태어날 때 겪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내 이외에는 자기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사람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하는 데 반해, 새로 들어온 고양이는 성격이 딴판이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활동적으로 사는 그를 아내는 독일어로 빠르다는 뜻으로 '슈넬(schnell)'이라고 불렀다.

인간이 길들인 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가 개와 고양이다. 둘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개는 먹이를 주는 인간에게 거의 무조건적 사랑을 보내지만, 고양이는 평소엔 거리를 두고 있다가 필요할 땐 슬며시 다가와 유혹하는 매혹적인 애인처럼 행동한다. 개와 고양이는 인간과의 권력관계에서도 정반대다. 개는 주인을 자신을 지배하는 왕처럼 섬기지만, 고양이는 친한 인간을 자신을 섬기는 하인처럼 대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만약 이사를 하면 개는 주인을 따라가지만, 고양이는 스스로가 집주인이라 생각해서 그냥 남아 있으려 한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고양이 앞의 생선"이란 말이 진실이 아님을 알았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다는 의미로 쓰는 그 말이 '융에'와 '슈넬'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주는 사료만 먹고 다른 것은 거의 먹지 않는다. 다른 유기체로부터 에너지원을 섭취해야 하는 동물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앎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나누는 것인데, 그것은 선천적인 '자연'이 아닌 길들여지는 '문화'라는 것을 고양이의 생태를 통해 알았다.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태어난 것은 죽는다. 13년 동안 자식으로 살았던 '슈넬'이 며칠 전 우리 곁을 떠났다. 고양이도 당뇨병을 앓는다. 온종일 물만 먹는 걸 보다 못해 아내가 병원에 데려갔다. 수의사는 여러 검사를 해보아도 별 이상이 없다면서 주사를 놓았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집에 돌아온 후 '슈넬'은 신음 소리만 내고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 있었다. 1주일 내내 그릇에 담긴 물만 바라볼 뿐 먹지 못하더니,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도 그렇게 죽기를 바라는 너무나 평온한 죽음이었다. 그는 자기 죽음을 알았던 것 같다. 얼마 전 타개한 이어령 선생님은 죽음을 "철장을 나온 호랑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철장 속 호랑이"처럼 바라보지만, 우리는 철장으로부터 뛰어나온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것처럼 죽임을 당한다. 국문학자 김열규 선생님은 근대인은 "죽음을 죽였다."라고 했다.

아내는 '슈넬'을 여주에 있는 자기 집안 선산의 잣나무 아래에 묻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는 망자(亡者)와의 이별도 제대로 못 할 뿐만 아니라, 사망자가 너무 많아서 제때 장례도 못 치르는 형편이다. 죽음을 죽인 우리가 벌을 받고 있다. <천 개의 바람>이란 노래로 불리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마라)"라는 작자 미상의 시가 있다.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마라.
나는 거기에 없고. 나는 잠자지 않는다.
나는 불어오는 천개의 바람,
나는 눈 속에 박힌 반짝이는 금강석,
나는 무르익은 곡식 위의 햇빛,
나는 부드러운 가을비다.
당신이 아침에 바쁘게 일어날 때,
나는 빠르게 하늘을 드높이 올라
빙빙 떼 지어 날아다니는 새들이고,
밤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이라.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마라.
나는 거기에 없고. 나는 죽지 않았다.

죽음을 슬퍼하지 말자. 죽음은 <천 개의 바람>이다.


글쓴이 /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철학과현실』책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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