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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 신(神)은 존재하는가? - 권병규
 관리자  | 2022·03·29 13:14 |
군대에 입대하여 존재에 대한 질문이 솟구칠 때 입소대대 교회로 향했다. 젊은 목사님은 전방에서 전차에 깔린 한 병사의 비명이 산에 메아리치는 현장에서 젊은 군인으로서 느꼈던 존재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 했다. 서로 진 짐의 크기는 다르더라도 같은 높이에서 공감할 수 있었고, 성경 구절은 깊은 의미로 흡수됐다. 훈련병으로서 훈련소의 대형 교회를 향했다. 중년의 영관급 목사는 소수의 장교들을 향해 설교를 전하기 바빴고, 대부분의 훈련병은 졸기 바빴다. 나는 절과 성당을 차례로 방문했다. 나를 위로해줄 신의 존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궁금한 것이 많았다. 비는 왜 오는가? 해는 왜 뜨고 지는가? 어머니께 질문했다. 항상 같은 답이셨다.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고 명료했다. 대학 시절 진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선과 악, 신의 존재와 같은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철학, 종교학, 과학 수업을 들었다. 공부를 할수록 깨닫는 것은 인간의 무지였다. 과학조차도 설명 없이 단정하고 넘어가는 무지의 영역이 존재했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 너머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영역을 신(神)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존의 상식과 신념이 허물어지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접했을 때 흔들린다. 허물어진 영혼은 그 원인을 찾는다. 원인을 찾지 못하면 희생양이라도 만든다. 그래도 해답을 찾지 못하면 헝클어진 정신은 제자리를 못 찾고 미치기도 한다. 종교심리학 원서에서 읽은 사례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날벼락을 만나 눈이 멀었고 이후 시력을 회복한 바울이 회심했다는 이야기다. 마르틴 루터 또한 천둥·번개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했다고 한다.

신의 존재는 많은 철학자들의 화두였다. 스피노자는 신의 존재를 수학과 논리를 통해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신이 전지전능하고 영원무궁하다면 그러한 신은 자연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내가 잠시 후 오른손을 뻗을지 왼손을 뻗을지 알아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나의 존재 자체가 신의 존재 자체에 포함이 되어야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스피노자는 신의 모습을 가장 포괄적으로 본 철학자에 속할 것이다. 칸트는 실천이성의 요청으로 최고선으로서의 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파악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외쳤다. 절대적 가치가 본질적 의미를 잃고 허물어짐을 이야기 한 것이다. 야스퍼스는 인간의 실존이 겪는 한계상황 자체가 신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한다.

만일 스피노자가 논증한 신의 모습이 맞는다면 과연 신의 의지는 존재하는가? 신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가? 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우주 만물과 자연이 곧 신이라면 신과 별개로 존재하는 신의 의지와 의식을 구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신이 내 오른팔의 오르내림까지 개입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개입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나 개인의 삶 속에서 신이 개입한 순간이 있었음을 확인한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할 때 모든 전략과 전술은 완벽했고 지형 또한 나폴레옹에게 절대적 우위를 안겨주고 있었다. 그런데 전투가 시작되자 나폴레옹 부대 쪽으로만 비가 내렸고 진흙 구덩이 속에서 대포를 움직일 수 없어 패색 짙어질 때 나폴레옹은 신음하듯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것은 신의 뜻이다." 슈바이처는 몸이 약해 몸져누워 있다가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같은 생명의 소리에 "생명에의 경외"라는 깨달음을 얻고 아프리카로 향했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경우도 와병 중에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 웃음소리에서 생명을 느끼고 일어섰다고 한다. 케쿨레는 꿈속에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을 보고 벤젠의 분자구조를 발견했다 한다.

신은 인간을 제약하는가? 인도영화 〈세 얼간이〉에는 신실한 힌두교도가 나온다. 그는 너무도 가난한 집안 출신인데 매사를 신에게 빌고 부적과 미신을 맹신한다. 그는 가족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자신의 노력을 믿지 못하고 오로지 신에게 의지한다. 학교에서 정학을 받게 된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나서 모든 부적을 버리고 정신적으로 독립하게 된다. 이렇듯 신은 인간의 의식을 장악하기도 한다. 신에 장악된 인간은 신을 명분으로 전쟁을 치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전쟁은 인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전쟁을 넘어서는 잔인함과 폭력성을 보였다. 또한 신이나 진리를 소수가 독점하고 있다는 주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질서가 흔들리는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신은 존재하고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인간에게 있다. 신의 존재를 곡해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몰두하는 것은 항상 인간이다. 신으로 대변되는 궁극의 진리 또는 최고선을 향한 마음과 그러한 인식 과정의 무궁한 상상력은 인간의 잣대로 인해 제약되고 경계가 그어진다. 신과 진리 안에서 자유로워야 할 인간의 존재는 인간이 왜곡한 신에 대한 언표(言表)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스스로를 구속하는 정신적 종속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상황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작금의 우리 사회가 처한 내면의 모습이라는 점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글쓴이 / 권병규
법무법인 청현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 前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前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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