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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이 통하는 현실 - 이택호
 관리자  | 2022·03·22 14:52 |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beating straw man fallacy)'는 논증의 한 종류인데, 상대방의 입장을 왜곡함으로써 발생하는 오류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왜곡하여 허상을 만들어내고, 그 허상을 반복적으로 공격하며 반박하는 것이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이다. 이때 허상을 아무리 공격해 보았자 상대방의 원래 입장은 전혀 반박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허상을 따르고 즐긴다.

한국의 전래동화 중에 "당나귀 팔러 가는 방앗간 집 아버지와 어린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서양의 이솝우화에도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이미 여러 나라의 초등교육 과정에서 자료로 이용하여 주위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 자율적인 판단의 소중함과 절제의 미덕을 교육한다.

당나귀를 기르던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시장에 가고 있다. 당나귀를 끌고 걸어가는 부자를 본 사람들이 비웃는다. 당나귀를 데리고 가면서 타고 가야지 걸어가다니 당나귀가 아깝다고 웃었다. 과연 생각해 보니, 당나귀를 두고 걸어간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나귀에 태웠다.

이 대목에서 상황을 정리해 보자. 인간은 짐승과 구별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본주의가 지배하는 상황이다. 인본주의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며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임을 확신하는 견해다. 누군가는 타고 누군가는 걸어가야 한다. 이제 불평등이 발생한다. 특히 당나귀의 부담이 늘어난다. 그래서 아들이 먼저 타고 간다.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얼마쯤 가는데 경로효친 사상과 장유유서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건강하고 젊은 어린 아들이 나이 든 아버지를 걷게 하는 것은 불효라고 비난한다. 젊은 아들이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의 희생자가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나귀에 올라타고, 아들이 걸어간다. 당나귀의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얼마 가지 않아 차별금지 및 아동학대 반대 운동을 펴는 인권론자들을 만난다. 자신만 편하게 당나귀를 타고 가면서 아이를 걷게 하는 것은 나쁜 부모라며,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으로 아버지를 공격한다. 그러잖아도 아이를 걸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그 소리를 듣고 나니 미안해서 아들을 앞에 태웠다. 아버지의 합리적 판단의 근거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지향하는 공리주의이다. 당나귀의 부담이 극대화된다.

그렇게 얼마쯤 가고 있는데,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이 나타난다. 이들이 말하기를 당나귀가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두 사람이 타고 가니 당나귀가 얼마나 힘들겠냐며 인정머리 없는 주인이라고 비난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당나귀 발을 묶어 아버지와 아들이 어깨에 메고 간다. 당나귀에겐 오히려 고문이나 학대일 뿐이다. 개울을 건너려는데 당나귀가 괴로워서 몸부림치다가 강에 빠져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을 사용하는 사공들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이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입장이라고 믿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왜곡하고 비난하는 허수아비 때리기와 '장님 코끼리 논쟁'을 벗어날 수 없다. 이번 3.9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우리는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의 여러 유형을 유감없이 보았다.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것 같다.


글쓴이 / 이택호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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