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꼭대기로 올라갈까요?

 

 

 






777. 이제는 ‘악수’를 할 시간 - 이진우
 관리자  | 2022·03·15 13:55 |
코로나 팬데믹이 3년째 세계를 지배하면서 우리에게 매우 익숙했던 사회적 의례가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악평을 받는 ‘악수(握手)’가 그것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사람들은 악수를 꺼릴 뿐만 아니라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나면 자연스럽게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서로 접촉하며 친밀함을 나누었던 게 언제였던가? 코로나와 함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사회적 거리 두기’는 악수를 영원히 배척할 것처럼 보인다. 전염병이 끝난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도 악수가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악수는 정말 소멸할 것인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악수에 종말을 고할 계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였던 시기에도 사람들은 악수를 하지 않았다. 애리조나의 한 도시는 악수를 법으로 금지하기까지 하였다. 18세기 말 필라델피아에 황열병이 돌았을 때 인사하려고 손을 내미는 행위는 대단한 결례로 여겨졌다. 1894년,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콜레라가 발병하였을 때는 시민들이 악수 반대 연합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감사와 화해 따위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든 아니면 단순히 인사를 하기 위해서든, 두 사람이 각자 한 손을 마주 내어 잡는 악수의 행위는 언제나 다시 돌아왔다.

  악수가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악수에 관한 최초의 묘사는 기원전 9세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된다. 님루드(Nimrud)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한 부조는 아시리아 왕 샬마네저가 바빌론의 통치자와 악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악수는 두 명의 왕이 평등한 관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에서 악수를 서약과 신뢰의 표시로 여러 번 묘사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악수는 종종 죽은 자와 산 자의 영원한 관계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이런 사회적 의례는 로마 문화를 거치면서 우정과 충성의 표시로 이해되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와 보노보에서도 상대방의 손을 잡는 행위는 종종 화해의 태도로 이해된다. 어느 인류학자는 악수의 역사가 적어도 7백만 년은 되었다고 주장한다. 악수가 인간의 문화적 유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수에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문화적 의미가 있다. 악수는 종종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악수도 있고, 최근에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악수를 떠올릴 수도 있다. 트럼프는 사실 악수의 의미를 변형시킨 장본인기도 하다. 그는 다른 국가의 정상들과 만날 때 악수를 하며 손에 힘을 주어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결례를 범하곤 하였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이러한 태도를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여 더 힘차게 끌어당겨, 29초 동안이나 서로 밀고 당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악수는 한편으로 호의와 친화의 표시로, 다른 한편으로는 힘과 우월감의 표시로 해석되기도 한다.

우리는 악수의 문화적 의미론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의 부드러운 악수가 약함의 표시가 아니듯이 힘세게 손을 쥔다고 해서 강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악수는 일차적으로 피부와 피부의 접촉이다. 어떤 사람은 무기를 들지 않은 빈손을 보여주려고 악수가 시작하였다고 말하지만, 그럴 목적이었다면 그냥 손을 쥐지 않고 흔들기만 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중요한 핵심은 신체적 접촉이다. 누구나 서로 손을 쥐는 행위가 병을 옮길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위함이 오히려 악수의 의미를 더욱 강화한다. 악수는 ‘나는 당신을 신뢰한다’, ‘나는 당신이 건강하다고 믿는다’는 신뢰의 표시다.

둘째, 악수는 동등한 관계를 표현한다. 메소포타미아의 부조가 말해주듯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평등하다고 여겨질 때 비로소 악수가 이루어진다. 악수의 관계는 눈높이의 관계다. 상사와 부하,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이 만날 때 악수는 적어도 ‘상호인정’의 표현이다. 예컨대 침 뱉는 행위가 혐오감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악수는 서로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친밀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셋째, 악수는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한다. 악수하면서 딴청을 부리거나 다른 곳을 보는 것만큼 예의에 어긋나는 일도 없다. 악수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 진정한 악수는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맞추면서 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얼굴이 다른 인격의 가장 적나라한 표현이라고 한다. “얼굴의 피부는 가장 벌거벗은 채로 가장 많이 노출된 피부다.” 우리의 얼굴은 외부의 위협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살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바로 얼굴이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이런 상호관계가 윤리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손을 마주 잡고 악수할 시간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서로의 손을 잡아보지도 못했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마스크’와 악수를 금기시한 ‘사회적 거리 두기’만 말하는 건 아니다. 20대 대선 결과가 말해주듯이 우리 사회는 완전히 두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져 서로 손을 내밀기는커녕 얼굴도 보지 않으려 한다. 분열을 극복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룰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 만나서 악수를 하는 일이다. 얼굴을 보면서는 침을 뱉지도, 혐오의 말을 하지도 못할 것이다. 손으로 바이러스를 옮길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생각을 옮기는 게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악수를 자주 하면 서로가 그렇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이제 우리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악수를 많이 하자.

글쓴이/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계간 『철학과현실』편집인
     
792   792. ‘무관심’이 필요한 과민사회 - 이진우 22·06·28 23
791   791. 자서전으로 본 김지하, 〈흰 그늘의 길〉 - 윤평중 22·06·21 56
790   790. '손흥민'이라는 현상 - 엄정식 22·06·14 34
789   789. “거룩한” 확신 - 손봉호 22·06·07 38
788   788. 신경 써야 할 것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 김도식 22·05·31 29
787   787.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김기봉 22·05·24 66
786   786.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이택호 22·05·17 34
785   785. 페이크 워크 - 이진우 22·05·10 44
784   784.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 윤평중 22·05·03 52
783   783. 불편과 불행, 그리고 자유 - 엄정식 22·04·26 48
782   782. 소극적 공리주의 - 손봉호 22·04·19 54
781   781. 실력이 보상받는 공정한 사회 - 김도식 22·04·12 47
780   780. 죽음과 <천개의 바람> - 김기봉 22·04·05 142
779   779. 신(神)은 존재하는가? - 권병규 22·03·29 363
778   778.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이 통하는 현실 - 이택호 22·03·22 60
  777. 이제는 ‘악수’를 할 시간 - 이진우 22·03·15 18
776   776. 철학자와 현실정치 - 윤평중 22·03·08 65
775   775. 거짓말에 관하여 - 엄정식 22·02·28 56
774   774. 교육수준과 환경문제 - 손봉호 22·02·22 79
773   773. 실력을 감추어야 하는 사회 - 김도식 22·02·15 43
1234567891040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