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꼭대기로 올라갈까요?

 

 

 






775. 거짓말에 관하여 - 엄정식
 관리자  | 2022·02·28 15:02 |
아마 사소한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언제인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거짓말이란, 말하는 사람이 이미 거짓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듣는 사람을 의식적으로 사실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로 의식하는지 혹은 사실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참과 거짓의 차이도 모호할 수가 있다. 특히 어린이나 병적인 환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구분이 확실하지 않다. 심지어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결국 거짓말이 된 것을 포함한다면, 아마 그것은 우리 일상사의 일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에 출간된 듀크대 댄 애리얼리(Dan Ariely)의 저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서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선량한 사람들'중에 거짓말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전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 속임수는 괜찮겠지'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가령, 야근 시간을 부풀려 기록하거나 회사의 사무용품을 집에 가져가서 쓰는 직장인, 환자에게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는 의사, 커닝하는 학생 등 이른바 '소극적 부정행위자'들은 예상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저지른 피해의 규모도 그것을 합하면 극소수의 적극적인 범죄자들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소한 거짓과 부정의 파도 속에서 살아가며, 여기에 익숙해지는 동안 그것은 거대한 쓰나미로 돌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각자가 부정행위의 허용치를 두고 살지만,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주변의 도덕성이 흐리면 자신도 느슨해진다. 자신의 의심스러운 행동에는 남도 동참시켜서 자신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집단이 개인의 도덕성을 무디게도 한다. 집단에 속한 개인일수록 다수를 위한다며 큰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지도자가 거짓말을 해도 오히려 영웅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사소한 부정은 전염병과 같다. 자신이 지닌 병을 다른 사람에게 퍼뜨릴 수 있으며, 전염병이 유행하면 쉽게 옮겨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리얼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흥미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로마제국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관행이 있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개선장군이 거리 행진을 할 때 노예 한 명이 이 말을 반복해서 귓가에 속삭였다.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였다. 애리얼리는 그와 비슷한 도덕적 각성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철학적 거대 담론이나 성현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장황한 설교보다는 그들의 초상화를 걸어둔다든가 고해성사 같은 장치들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면 가벼운 거짓말이라도 삼가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각성제 같은 것 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지만 국민의 도덕적 위상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급하게 이루어진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의욕이 넘치거나 사명감이 지나치게 강해져서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종교인이나 예술가, 사업가가 된다면 적성에도 맞고 어느 정도 공헌하는 영역이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정치적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는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해서 보다 나은 세상을 '저세상'이나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거짓이 일상화된 정치인이 군림하면 그가 아무리 투철한 사명감이나 강한 의욕을 지니고 있더라도 정의로운 국가나 성숙한 사회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거짓은 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기마저 혼탁하게 하고 마침내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00여 년 전 일제 강점기에 도산 안창호 선생은, "거짓이 나라를 죽인 원수다. 우리는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고 절규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로 지금 그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글쓴이 / 엄정식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792   792. ‘무관심’이 필요한 과민사회 - 이진우 22·06·28 23
791   791. 자서전으로 본 김지하, 〈흰 그늘의 길〉 - 윤평중 22·06·21 56
790   790. '손흥민'이라는 현상 - 엄정식 22·06·14 34
789   789. “거룩한” 확신 - 손봉호 22·06·07 38
788   788. 신경 써야 할 것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 김도식 22·05·31 29
787   787.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김기봉 22·05·24 66
786   786.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이택호 22·05·17 34
785   785. 페이크 워크 - 이진우 22·05·10 44
784   784.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 윤평중 22·05·03 52
783   783. 불편과 불행, 그리고 자유 - 엄정식 22·04·26 48
782   782. 소극적 공리주의 - 손봉호 22·04·19 54
781   781. 실력이 보상받는 공정한 사회 - 김도식 22·04·12 47
780   780. 죽음과 <천개의 바람> - 김기봉 22·04·05 142
779   779. 신(神)은 존재하는가? - 권병규 22·03·29 363
778   778.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이 통하는 현실 - 이택호 22·03·22 59
777   777. 이제는 ‘악수’를 할 시간 - 이진우 22·03·15 18
776   776. 철학자와 현실정치 - 윤평중 22·03·08 65
  775. 거짓말에 관하여 - 엄정식 22·02·28 55
774   774. 교육수준과 환경문제 - 손봉호 22·02·22 78
773   773. 실력을 감추어야 하는 사회 - 김도식 22·02·15 43
1234567891040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