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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3. 실력을 감추어야 하는 사회 - 김도식
 관리자  | 2022·02·15 16:20 |
몇 달 전에 재수생 자녀를 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들이 학생부 종합전형에 지원하려고 하는데, 자기소개서가 전년에 비해서 너무 축소되어 작년에 쓴 자소서가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하소연이었다. 작년 입시에서는 자기소개서 문항이 4개에 약 4천 자 정도를 쓸 수 있었던 반면, 올해 입시에는 문항과 글자 수가 반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작년에 아이가 원서를 쓰면서도 고등학교 때의 다양한 활동을 4천 자에 담아내기가 어려워서 고민을 하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올해는 더욱 줄어든 글자 수를 보면서 막막해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도의 변경은 쓸 것이 많은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조만간 대입에서 자기소개서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확정되었다니, 이는 개선이 아니고 개악이다. 그뿐 아니라 수상 실적도 본인이 받은 여러 개의 상 중에 5개를 수시를 지원하는 여섯 대학에 동일하게 제시해야 해서, 자신이 지원하는 전공에 따라 수상 실적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이가 한숨을 쉰다는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실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불리해진 제도의 변화였다.

얼마 전, 어떤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에 자신이 대학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적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적으면 안 된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더니, 어느 대학 출신인지를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을 다닌 흔적조차 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의 동아리 활동도 이것이 대학 생활에서 이루어진 일임이 드러나지 않게 서술해야 한다고 했다.

위의 두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이가 없었다. 우리는 경쟁 사회에 살고 있고 경쟁에서는 실력 있는 사람이 선발되는 것이 공정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본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대학 입시나 공기업에 지원할 때 스스로 노력해서 쌓은 업적을 애써 감추어야 하는 곳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국가 주도의 정책이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는 인상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과열된 경쟁 체제에서 수상 실적이나 학벌 등이 지니는 부작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의 정책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다. 선발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제한하는 것은 선발자에게 합격자를 대충 뽑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주변에 있는 입학사정관들에게 물어보니, 자기들도 선발에 도움이 되는 주요 정보들을 가려놓고 학생들을 어떻게 뽑으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러다가 일반고등학교를 추첨해서 들어가듯이, 대학이나 회사도 근거리 배정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노력하여 실력을 갖춘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이다. 반면에 복지라는 것은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국가나 사회가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최소치를 높이자는 것이지 최대치를 낮추자는 것은 아니다. 잘하는 사람을 끌어내려서 비슷한 수준이 되도록 하는 것이 평등의 정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정책을 보면 이러한 기본도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도 좁고 천연자원도 부족하여, 오로지 우리 국민이 가지는 탁월성을 가지고 세계에 나가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우리가 세계와 경쟁해서 쌓아놓은 성과는 우리가 가지는 성실성에 남다른 노력이 더해져서 얻어진 것이다. 하지만 실력을 감춘 국민이 많아져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굳이 실력을 키우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자신의 실력을 감추도록 요구받아서는 곤란하다. 반대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보라고 격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어렵게 올라서고 있는 선진국 대열에서 우리나라가 한 걸음 더 도약하려면, 실력 있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을 무시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이지만, 실력이 있는 사람을 시샘하는 사회 역시 성숙한 사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글쓴이 / 김도식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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