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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 불쉿(Bullshit) 현상- 권병규
 관리자  | 2022·01·25 11:08 |
최근 책 제목으로 '불쉿'이 유행이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Bullshit Jobs, 2018), 진화생물학자 칼 벅스트롬과 데이터 과학자 제빈 웨스트가 공저한 『똑똑하게 생존하기』(Calling Bullshit, 2021) 등이 있다. 이러한 책들은 국내외의 저명한 분들이 강력히 추천하기에 읽어보게 되었다. '불쉿'은 일종의 속어이기 때문에 점잖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꺼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제목의 책들이 출판되고 세계적인 호응을 받는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을 달리 표현할 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불쉿 잡』은 무의미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다양한 직업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례로 선진국 군대에서 바로 옆자리로 컴퓨터를 옮기기 위해 하청업체의 하청업체를 통해 연락받은 직원이 몇백 킬로미터를 차를 몰고 가서 컴퓨터를 몇 미터 옆으로 옮겨주는 상황이 나온다. 또한, 장기근속을 표창하기 위해 직원을 찾으니, 그 공무원이 몇 년째 자리를 비우고 스피노자를 연구하여 전문가가 된 것을 발견했다는 실화도 나온다. 위 사람이 바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는 사례를 읽으면, 이런 현상이 남의 나라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빌딩 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문서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중 자신의 일이 '불쉿 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에 따라 40%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의미 없는 노동조차 부가가치로 누적하여 가치의 허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변호사나 관리직조차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 또한 제한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사회나 조직의 운영 체계가 정신을 차려 생각해 보면 얼마나 소모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생생한 사례를 통해 생각해보게 한다.

『똑똑하게 생존하기』는 사회에 만연한 헛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헛소리의 사례는 가짜뉴스나 거짓말이고, 그 반대말은 사실 또는 진실이다. 디지털 시대의 헛소리는 온라인이라는 매개를 통해 더 넓고 빠르게 퍼져나가고 다양한 숫자, 그림, 통계, 데이터를 통해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헛소리는 사실을 목적 지향적으로 왜곡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를 더 강화시킨다. 헛소리를 검증해야 할 레거시 미디어와 전문가들조차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해관계를 숨기기 위한 엉성한 주장과 사회 지도층의 미신에 근거한 행위의 횡행은 우리 사회 발전의 토대를 이루었던 합리성과 과학적 사고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철학자 엄정식 교수께서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의 『지금 다시 계몽』(Enlightenment Now, 2018)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지금은 과학기술 시대, 세계화 시대, 양극화 시대와 같은 시대정신에 걸맞은 계몽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라고 피력하신 견해(『철학과현실』 2021년 겨울호)에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똑똑하게 생존하기』는 사회나 제도가 그러한 검증의 역할을 못 한다면 개인 스스로가 헛소리를 걸러내는 마음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하면서 몇 가지 요령을 알려준다. 이중 우리가 항상 접하는 인터넷에서 헛소리 찾기 기술은 실용적으로 다가온다. 몇 가지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다양하게 다른 출처를 확인하고, 정보의 출처나 웹사이트가 믿을만한지 확인한다. 뉴스의 근원을 논문이나 보고서를 통해 찾아본다. 여러 곳에서 많이 봤다고 해서 진실이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생각은 많이 하고 공유는 적게 하여 정보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한다. 이러한 마음의 습관은 매일 수없이 발생하는 뉴스, 논평, 정치인들의 발언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 / 권병규
법무법인 청현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 前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前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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