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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9. 올려다보지 마라! - 이진우
 관리자  | 2022·01·11 14:09 |
〈Don't Look Up〉, 영화 평론가들에게서는 별로 높은 평점을 받지 못한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제니퍼 로렌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과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가 비록 "소란스럽고 어설프다."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기후변화 과학자와 연구자 그리고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세계 시민들에게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Don't Look Up〉은 지구의 종말을 그린 암울하고 진지한 재난 스토리이지만, 감독 아담 맥케이(Adam McKay)는 무거운 주제를 매우 코믹하게 풀어나갔다. 박사과정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날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돌진해오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녀의 지도교수인 랜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알린다. 그들은 이 행성 살인자가 정확히 6개월 후면 99.7%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두 과학자는 어렵사리 대통령(메릴 스트립)과 면담을 하게 되고,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할 2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교수가 혜성의 충돌을 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하려고 애쓸수록 위기상황은 더욱 희화화된다. 6개월 후면 혜성이 충돌하여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학생의 말이 훨씬 더 명료하지만, 대통령은 충돌할 확률이 100%가 아니라는 말에 안심하고, 곧 있을 선거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사태를 지켜보겠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목전의 선거이지, 결코 6개월 후의 지구멸망이 아니다.

극심한 공포와 절박감에 빠진 두 과학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인기 있는 방송의 모닝 쇼에 출연한다. 오락과 예능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에서 혜성 충돌의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TV 진행자들은 아무리 심각한 것이라도 가볍게 만들고, 아무리 암울한 일도 단순한 오락으로 바꿔놓는 재능을 갖고 있지 않은가. 두 과학자의 경고는 유명 가수가 애인과 헤어진 이야기에 묻힌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락이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 대통령은 결국 혜성의 방향을 바꾸는 계획에 착수하지만, 혜성이 가진 희귀 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사용하자는 거액 기부자의 말을 듣는다. "우리 말이 분명하지 않은가요. 우리는 모두 100% 죽게 된다고요!" 케이트는 욕을 섞어 울부짖지만, 듣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종말이 가까워졌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미식추구 슈퍼볼이 열릴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하늘에 혜성의 모습이 분명하게 보일 때에도 '올려다보지 마라!'라는 운동이 벌어질 뿐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재앙이다.

기후과학자 피터 칼무스(Peter Calmus)는 이 영화가 "기후 파괴에 대한 경악스러운 무반응"을 정확하게 그려낸 풍자라고 상찬하였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징후와 사실들은 너무 많다. 예컨대 남극의 극지 연구소인 '장보고 기지'와 '세종 기지' 사이에 있는 '스웨이츠 빙하(Thwaites Glacier)'가 녹으면 세계 해수면이 65cm 상승한다고 한다. 한반도 전체 면적과 맞먹는 이 빙하 밑의 터널 같은 구멍에 기후변화로 2배의 바닷물이 들어가 붕괴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많은 연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게 된다. 그런데 누가 이런 과학자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가?

왜 우리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심상치 않은 데도 흘려듣는 것일까? 21세기의 핵심문제인 '사회적 불평등'과 '기후변화'에 대한 무반응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올려다보지 마라"라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하늘의 별을 관찰하던 탈레스를 비웃은 트라키아의 하녀가 떠올랐다. 우주의 원리를 탐구한다고 하늘의 별만 바라보다가 발밑의 웅덩이는 보지 못하고 빠져 넘어진 탈레스를 비웃은 하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철학에 꼬리표처럼 붙어있다. "올려다보지 마라!" "발밑의 웅덩이를 내려다보라!" 언뜻 구체적 현실 문제에 집중하라는 현실주의의 격언처럼 들리는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지나친 현실 집착은 현실 문제를 왜곡한다.

'하늘의 별'은 우리가 그것을 보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이다. 굳이 '본질'이니 '섭리'니 '이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다 보면, 우리는 정작 필요한 핵심문제는 놓칠 수 있다. 밑만 바라보다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모를 수도 있다. 우리의 시선을 본질적인 문제에서 수많은 사소한 문제들로 돌려놓는 것이 바로 예능과 오락이다. "Don’t Look Up!" 이것은 어떤 심각한 문제도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오락의 명법이다. 무엇이 심각한 문제인지 알려면 올려다보아야 한다. 오늘은 넷플릭스를 끄고 하늘의 별을 올려다봐야겠다. 그런데 별이 보일까?

글쓴이 /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계간『철학과현실』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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