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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 왜 철학엔 조숙한 천재가 없는가? - 윤평중
 관리자  | 2022·01·04 10:05 |
역사를 돌아보면 천재적 재능(prodigy)이 가장 자주 출현하는 영역은 아마도 예술일 것이다. 나의 가설이지만, 예술에서의 영재 출현 빈도도 음악, 미술, 문학이 다르고, 문학에서도 시와 소설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음악이야말로 천재가 출현하는 대표 영역이다. 물론 음악적 천재의 상징인 모차르트도 타고난 재능과 가혹한 조기교육의 합작품이다. 숨 쉴 틈도 없는 스파르타식 교육과 연주 여행의 강행군으로 꼬마 모차르트를 '천재 음악가'의 길로 몰고 간 모차르트 아버지의 행태는 오늘날이라면 아동 학대의 혐의를 받았을 터이다.

하지만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증명하듯이 재능이 없는데 후천적 훈련만으로 뛰어난 음악가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예술에서는 수련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장영주(Sarah Chang, 1980~ )가 코흘리개 소녀 시절, 그녀의 연주를 처음 들은 뉴욕의 세계적 지휘자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경악해 한다. 1992년 클래식 분야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른 12살 장영주의 데뷔 음반은 기존 바이올린의 4분의 1 사이즈의 바이올린으로 녹음한 것이다. 한 번도 콩쿠르에 나간 적 없는 스무 살 장영주의 연주조차 50~60대 거장의 희로애락과 원숙함을 담아내 우리에게 들려준다. 불가사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어린 천재들은 시에서도 출현한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요절했어도 불멸의 이름으로 남은 시인들이 눈에 띈다. 일곱 살 때부터 명성이 자자했지만 꿈을 펴지 못하고 27살에 죽은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 790~816)의 시 세계는 기괴하고 환상적이어서, 그는 시귀(詩鬼)라고까지 불린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인 랭보(A. Rimbaud, 1854~1891)는 16살에 시인으로 유명해지고 25살에 문학을 버리지만, 그의 시는 불멸의 이름으로 남았다. 한국 문학사에서 천재 시인의 상징인 이상(1910~1937)은 20대 초·중반에 문제작들을 쏟아냈다. 이에 비해 소설,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엔 어린 천재가 불후의 역작을 남긴 사례가 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예술을 영감(靈感, inspiration)에서 비롯된 예술과 모방(mimesis)과 연관된 예술로 나누는 고전적 분류법이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시의 본질은 영감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나 수학자들 가운데 가끔 어린 천재가 나오는 것도 영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모방과 연계된 예술로 간주되는 미술에서도 천재는 엄존한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 가보면, 그 자신 화가였던 피카소의 부친이 아들의 천재 앞에 붓을 던지게 된 사정을 즉각 이해하게 된다. 회화 기법에서 십 대 초반의 피카소는 스페인 미술계를 휩쓸 정도로 고도의 완성도를 보여 준다.

그런데 철학에서는 어린 천재가 10대나 20대에 문제작이나 고전을 생산한 경우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만약 이런 내 가설이 맞는다면 그 이유는 뭘까? 현대철학사에 방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철학적 천재의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비트겐슈타인(1889~1951)도 30대 초반인 1921년에야 『논리철학논고』(Tractatus)를 출판한다. 아버지가 앞장선 영재 교육의 대표적 성공 사례인 존 스튜어트 밀은 세 살 때부터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우고 10대 초반에 박사 수준의 광범위한 공부를 끝냈지만, 그가 논저를 펴낸 것은 30대 후반부터였다.

철학적 천재를 상기할 때 가장 선명한 인물은 후한 삼국시대의 왕필(226~249)이다. 그는 21세에 노자注를 썼고 23세에 주역注를 완성했다. 동아시아 고전 가운데 가장 난해한 텍스트 가운데 하나인 도덕경과 주역을 독창적으로 주해한 왕필의 텍스트는 도합 일천 종이 넘는 도덕경 주석 가운데 단연 압권이며, 오늘날에도 학계의 표준으로 인정된다. 죽간본과 백서본 도덕경이 출토된 이후에도 왕필의 해석은 빛을 잃지 않았다. 10대 후반~20대 초반 청년의 사유가 위진현학(魏晉玄學)을 창도하고 동아시아 형이상학의 거대한 원류가 됐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왕필이 24세에 요절한 건 하늘의 뜻이었을까?

난 요사이 자기 전에 도덕경을 몇 장씩 읽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원문과 각종 한글 번역본을 비교하며 읽는다. 원문을 명쾌하게 주석한 왕필의 해설이 눈부시다는 걸 읽을 때마다 절감한다. 도덕경과 주역에 대한 20대 초반 청년의 주석이라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왕필의 해석이 해당 학계에서 이천 년 가깝게 유효한 것으로 승인되는 것도 경이로운 일이다. 왕필 주(注)가 집안의 오랜 가학(家學) 전통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반론은 왕필의 재능을 부정하는 반증은 되지 못하지만, 우리에게 상당한 위안을 선사한다. 왕필의 명성에 끌려 그를 면담한 당대의 권력자가 왕필에 대해 현실감을 결여한 시건방진 책상물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한 것도 흥미롭다. 유비, 관우, 조조가 풍미하던 천하 대란의 시대에 왕필이 시종일관 형이상학에 대해서만 장광설을 토했기 때문이었다.

도덕경 원본은 노년의 철학자가 썼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해석 앞에 열려진 도덕경이 주는 심원한 치유 효과가 있다. 오래 살고, 산전수전 다 겪고, 우주와 삶에 대해 깊고 넓게 생각하며, 현묘하게 개념을 묘파한 원숙한 철학자가 아니었다면 도덕경은 결코 서술될 수 없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이거니와 칸트와 헤겔의 대표작도 노년의 원숙한 정신의 산물이다. 이는 오래 살아야 좋은 철학책을 쓸 수 있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좋은 학자들도 나이가 들면 총기가 흐려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와 삶의 근본을 성찰하는 철학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세월과 함께 익어가야 온전히 숙성한다. 철학이 한순간의 천재적 영감으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학은 삶과 사유(思惟)의 노동이 장기적으로 통합되어야 일정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신속한 성과를 선호하는 현대와 불화한다. 오래 앉아 버티면서 진땀 흘리는 정신노동과 성역 없는 상호토론을 통해서만 철학의 깊이와 넓이가 축적된다. 철학이 조숙한 천재를 거부하는 본질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쓴이 / 윤평중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계간『철학과현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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