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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 '깐부'의 배신 - 이진우
 관리자  | 2021·11·09 10:26 |
"우린 깐부잖아. 깐부 사이엔 네 것 내 것이 없는 거야."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킨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이 대사는 최대 유행어가 되었다. 빚에 쫓기는 수백 명의 사람이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든 극한의 게임을 그린 드라마에서 '깐부'라는 단어가 도대체 어떤 의미이길래 이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유행어의 실상을 알려면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는 대신 사람들이 어떻게 이 낱말을 받아들이는지 알아보는 게 더 낫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양국의 협력을 다짐하는 글을 페북에 한글로 올려놓자 "프랑스와 한국은 깐부"라는 응원 댓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한국과 프랑스가 인도 태평양이 안정과 번영의 공간으로 유지되도록 공동의 노력을 지속해 나아간다는 내용보다는 한글로 작성하였다는 사실에 감동한 것처럼 보인다. 내용은 관계없이 형식만 공유하면 깐부가 되는 것일까?
  
여론에 민감한 정치가 한창인 유행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야당의 대권 주자들이 경선 토론을 하면서 비방이나 인신공격을 하지 않고 서로 우호적인 태도를 벌이면, 사람들은 "훈훈한 깐부토론"이라고 평가한다. 상대방 정책의 허점을 예리하게 파고들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대결보다는 동의하고 맞장구치면 깐부가 되는가 보다. "제 생각과 똑같네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와 함께하시죠." 상대방을 비웃고 헐뜯음으로써 자신을 높이는 비방 행위는 그만둬야 하겠지만, 이론과 이견이 없는 것이 진정한 깐부 관계일까?
  
물론 깐부는 상대방을 비방할 때도 사용된다. 민주당의 안민석 의원은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남욱, 김만배, 정영학을 깐부로 생각한다고 말하였고,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김만배와 깐부"라고 비꼬았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부정과 부패를 의심하고 싶은 동맹 관계를 깐부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깐부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쯤에서 드라마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게임 참가자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등의 아이들 놀이를 하지만, 탈락자는 모두 주최자에 의해 살해당한다. 구슬치기 게임에서 1번 참가자 오일남 할아버지와 주인공인 456번 참가자 기훈은 짝이 되는데, 이때 오일남 할아버지가 기훈에게 한 말이 깐부이다. 이 은어는 어린 시절 손가락 걸어 같은 편을 하던 내 팀이나 짝꿍, 동지를 뜻한다. 생사가 걸린 서바이벌 데스게임에서 과연 동지가 가능한 것일까? 사악한 게임에도 과연 인간미가 남아있는 것일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엄밀한 의미에서 승자와 패자가 없는 어린이 '놀이'를 승자독식의 '게임'으로 바꿔놓았다. 남이 죽거나 남을 죽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극단적인 자연 상태에서 네 것 내 것이 없는 동무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할아버지가 기훈의 손바닥 위에 구슬 하나를 올려놓으며 하는 말이 헛헛하게 귓전에 울린다. "가져, 자네 거야. 우리는 깐부잖아."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주인공을 살린 것은 사실이다. 왜 할아버지가 기훈을 깐부의 짝으로 생각한 것일까? 그는 기훈의 어떤 면에 끌린 것일까?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 드러난 반전에서 찾을 수 있다. 깐부 할아버지가 사실은 오징어 게임의 설계자였던 것이다. 그는 기훈과 마지막 내기를 한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누군가 구한다'와 '구하지 않는다'에서 구한다를 선택한 기훈은 내기에서 이기고, 깐부는 생을 마감한다.
  
여기서 우리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적나라한 서바이벌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깐부는 서로 돕는 관계다. 그러나 남을 돕고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는 기훈도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할아버지를 돕지 않는다. 생존 투쟁의 장에서 생명은 결코 공유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생존 투쟁의 서바이벌게임을 설계한 자가 인간성을 말한다는 것이 바로 깐부의 배신이다. 남을 배려하는 인간성을 말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된 사회에서 어떻게 깐부가 가능하단 말인가? 생존 자체가 최고선이 된 사회에서 섣부른 인간주의는 오히려 사악한 경쟁 사회를 은폐하고 기만할 뿐이다. "그만해. 나 무서워. 이러다가는 다 죽어."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처럼 들리는 게임 설계자의 이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바로 깐부의 배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공유해야 할까?

글쓴이 /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계간『철학과현실』책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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