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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 적수와 맞수 - 엄정식
 관리자  | 2021·10·26 13:23 |
오늘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지나친 적대적 태도와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깊다. 내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이러한 현상은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당내에서까지도 더욱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물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를 비방하거나 공격하면 서로 그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치권 자체의 품격이 훼손되고 국가의 위상마저 흔들릴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상대가 정치적인 면에서는 '적수'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동지가 될 수도 있는 '맞수'임을 인정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한동안 진정한 의미의 맞수들이 적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는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견제하면서도 군부 통치에 항거할 때는 신뢰하는 동지였다. 정치 스타일이나 성격은 크게 달랐지만, 그들은 상대를 인정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우리의 정치판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대선을 앞두고 일부 유력 주자들이 상대를 성토하며 비방하는 적대적 자세와 질적 수준을 보면, 정치적으로 오히려 퇴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에 의하면, 어떤 행위든지 '적수와 동지'라는 범주 안에 지배된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 되기에 충분하다. 지역감정, 학벌이나 학연, 혹은 혈연이나 지연도 모두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종교적, 도덕적, 경제적, 인종적 또는 그 밖의 모든 대립은 그것이 실제로 적수와 동지로 구분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할 경우에 정치적인 대립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런데 적수는 단순히 개인적 상대가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어느 집단에서의 상대를 의미하므로 '적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선 공적인 성격이 중시된다. 슈미트에 의하면, 정치적 의미의 적수는 개인적으로 증오할 필요가 없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맞수(Gegner)'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원수도 사적인 혹은 인간적인 영역에서는 서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슈미트의 제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영역의 특수성을 인정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전면적인 비방과 적개심의 수준을 조정할 수는 있다고 본다. 정치적 차원에서의 적수를 개인적 차원에서의 맞수로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름다운 승복의 미덕을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의 미래를 향해 서로 협력해 나아가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앨 고어가 보여주었던 그러한 미덕 말이다.

그 당시 부정 개표 시비로 얼룩졌던 플로리다주의 경우 앨 고어는 국민투표에서 54만 표차로 조지 W. 부시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표에서는 다섯 표차로 뒤져 패배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연방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36일 동안 미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고어의 승복 연설은 큰 감동으로 아직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동의 못 하지만 판결을 수용합니다. 우리의 실망은 미국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당시 미국 언론의 표현대로 '미국의 승리'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치판의 품위를 유지할 뿐 아니라 국가의 위상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도한 적대 정치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 엄정식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시민기구(WCO) 철학종교분과 위원장, 전 서강대 대학원장, 전 한국철학회 회장, 계간 철학과현실 편집인, 수필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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