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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정치 지도자들의 언어품격 - 손봉호
 관리자  | 2021·10·19 15:55 |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여주인공 데스데모나는 시녀 에밀리아로부터 자기 남편 오셀로가 자신을 오해해서 "창녀"라고 불렀다는 것을 전해 듣는다. 그녀는 "창녀"란 말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어서 "그녀(에밀리아)가 내 남편이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한 그 이름(Such as she says my lord did say I was)"하고 매우 복잡한 문장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상원의원의 딸로 귀족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창녀"같이 천박한 단어는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귀족, 양반 같은 계층이 일반인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시대는 이제 다행히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도 어떤 단어는 쓰지 않는 것이 교양인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다. 특히 욕설은 신문에도 "개OO", "나쁜OO" 등으로 표시되고, 요즘은 영자를 동원한 'GSGG'란 것도 눈에 뜨인다. (부디 이 욕은 영어 약어 사전에 한국발 신조어로 등재되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욕은 아니더라도 예의를 좀 갖춘 문화인이라면 막말, 비꼬는 말, 꼬집는 말, 후려치는 말 등 지나치게 야비하고 저속한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 사회에서 이런 언어를 서슴지 않고 마구 사용하는 부류는 SNS의 악플러들과 여야 정치인들이다. 전자는 무시해 버려도 문제 될 것 없고, 오히려 무시하는 것이 최선의 대처 방법이다. 그러나 후자는 무시해 버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우리 국회는 1년 내내 대부분 시간을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다투는 것으로 보내는데, 그 싸움에서 사용되는 말들이 일반 시민들도 민망하게 느낄 만큼 거칠고 야비하며 공격적이다. 물론 요즘 정치인들이 존경받는 나라는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다. 스웨덴에서는 정치가들이 비교적 존경을 누린다고 한다. 그런데 선진국들 가운데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친다면) 한국만큼 정치인이 존경받지 못하는 나라는 없지 않을까 한다. 나 같은 사람도 감히 마음 놓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그게 별로 특별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뿐 아니라 요즘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말 전쟁도 치열하고, 거기서도 막말, 거친 말, 꼬집는 말 등 수준 낮은 언어가 난무한다.

  한국 정치인들이 독한 말로 상대를 때리는 것은 그렇게 해야 자신이 이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그렇게 쉽게 속지 않는 것 같다. 야비하고 거친 말은 야비하고 거친 인격에서 나온다는 것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국회의 여야 간 말싸움에서 선봉에 서야 하는 사람은 원내총무인데, 최근 이런저런 투표에서 전직 원내총무들은 거의 다 탈락했다. 상대적으로 유능하기에 원내총무로 뽑혔을 텐데, 독설을 전담하는 악역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놓은 것 같다. 원내총무와는 달리 대통령은 국민의 모범도 되어야 하고 존경도 받아야 하는데 저급한 언어 사용은 심각한 결점이고 당선에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은 그가 겨우 14살이었을 때 『사교와 대화에서 예의 바르고 품위 있게 행동하는 규칙』(The Rules of Civility and  Decent Behavior in Company & Conversation)이란 소책자를 작성했다.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있다. 당시 프랑스 상류층이 지켰던 행동 규범에 근거한 것이라 하는데, 교양 있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110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이미 14살 때 그런 것을 만들었으니 그 자신도 그런 교양으로 훈련되었을 것이고, 후에 정치인이 되었을 때도 누구보다 더 거기에 충실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소식을 섣불리 전하지 않는다. 자신이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말을 해 준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항상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다."(79번) "말을 전달할 때는 상대방이 아무리 비열한 사람이라 해도 감정을 내세우지 말고 진중하게 한다."(83번) "논쟁을 할 때는 굳이 이기려 들지 말고 각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주며 …."(86번) "진지하고 안정되며 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도록 몸가짐을 정돈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사사건건 반박하지 않는다."(87번) 등 말에 관한 것들이 많다. 한국 정치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충고가 많으니 전체를 읽고 참고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 특히 대통령 후보자들이 저급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권력 획득과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은 국민들의 교양 수준과 판단능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이 저급한 언어를 쓰는 정치 후보자를 당선시키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다.


글쓴이 /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푸른아시아 이사장, 전 동덕여대 총장, 전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전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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