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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 2022년 대선과 시대정신 - 김기봉
 관리자  | 2021·09·28 10:20 |
문명의 전환기에 대한민국을 선도할 대통령을 뽑는 2022년 대선은 그야말로 국민의 선택이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지도자를 국민이 선택하지만, 그 선택이 초래할 결과를 국민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제도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라고 정의했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가의 부를 국민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공정한 배분을 하는 방법으로 존 롤스는 케이크를 나누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람을 분리하는 원칙을 제안했다. 국민이 먼저 대선을 통해 케이크의 몫을 나눌 지도자를 선택하면, 그의 주도로 배분이 이뤄지는 정치제도가 민주주의다. 선거를 치르는 짧은 기간만 국민은 주권자의 권한을 행사한다. 민주주의는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결정하는 한계는 있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가장 공정한 정치제도임은 틀림없다.

2022년 대선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한다. 선거판이 과열되면 될수록 가장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싫은 후보가 선택되지 않는 네거티브 선거가 되기 십상이라서, 그만큼 차기 정부는 문명의 전환이 요청하는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는 부담을 갖고 출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밖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로 평가받지만, 안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런 안과 밖의 시각차가 생겨나는가? 선거가 점점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시험대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그동안 우리가 치렀던 여러 대선 가운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은 선택을 한 적이 얼마나 되는가?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이름이 붙는 여러 정부가 많은 기대와 열망 속에서 출범했지만, 임기 말로 갈수록 날개 없는 추락을 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극적 운명을 겪었다. 왜 그런가?

역사에는 법칙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법칙은 영국의 역사가 액턴 경(Lord Acton)이 남긴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라는 명언이다. 2017년 촛불혁명은 제왕적 대통령을 몰아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를 철폐하진 못했다. 프랑스혁명 또한 같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프랑스혁명은 절대왕권을 붕괴시켰지만, 나폴레옹이라는 국민이 선출한 황제를 배출했다. 프랑스혁명의 시대정신을 유럽에 전파한 나폴레옹을 헤겔은 ‘마상(馬上)의 세계정신’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혁명이 전파한 시대정신의 희생양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2022년 대선에서 선택의 기준은 사람이나 정당이 아니라 시대정신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배이고 훌륭한 선장이라도 시대정신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역사의 항해에 성공할 수 없다. 결선 투표제가 없는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은 대체로 박빙의 승부로 결정이 난다. 취임할 때는 자기를 선택하지 않은 국민도 포용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혀도, 그런 통치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면, 최선의 정치는 시대정신을 나침반으로 삼고 국정 운영을 하는 거다. 시대정신의 눈은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해 있다. 과거의 이념과 가치체계가 아니라 미래를 여는 상상력과 이상을 갖고 있을 때, 시대정신의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국가를 전진시킬 수 있다.

최근 세계 국가 평가도 조사에서 30년 전만 해도 ‘넘사벽’으로 여겨졌던 일본을 한국이 추월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런 역사의 전환점에서 차기 정부의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새역사를 창조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 2022년 대선에서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하고 종래의 ‘선진국’ 모형을 대체하는 ‘선도국’ 모델을 만들어낼 혁신의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지상과제로 설정하는 국가이성의 담지자는 도덕적 성품을 갖춘 군자가 아니라 시대정신의 행운(fortuna)을 잡을 수 있는 비르투(virtu)를 가진 지도자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점점 더 네거티브 선거로 과열될 위험이 있는 2022년 대선이 그런 지도자를 뽑는 국민의 선택이 될 때, 대한민국은 문명의 전환기에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행운의 여신을 잡을 수 있다.

글쓴이 / 김기봉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계간『철학과현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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