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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 '의례'를 잊어버린 사회 - 이진우
 관리자  | 2021·09·14 18:17 |
'의례'는 어떤 공동체의 가치를 보존하고 표현하는 상징적 행위다. 사랑의 유대와 관계를 다른 사람들 앞에 언약하고 선포하는 결혼식이나 죽은 자를 기림으로써 산 자들의 관계를 새롭게 다지는 장례식과 같은 의례는 모두 정해진 형식에 따라 반복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상징적 문화기술이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익숙했던 단계를 떠나 다른 단계로 넘어갈 때도 일정한 의례를 치름으로써 이 전환에 의미를 부여한다. 문화 인류학에서는 개인이 한 그룹을 떠나 다른 그룹에 들어갈 때 발생하는 의식을 '통과 의례(rite of passage)'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형식적 의식은 변화와 전환에 의미를 부여한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였던 ‘의례’가 사라지고 있다.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관리하려는 현대화 때문일까? 정신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가 우세해진 세속화의 과정에서 세계가 완전히 탈마법화되어 어떤 상징도 믿지 않기 때문일까? 모든 의례는 겉만 보기 좋게 꾸미어 드러내는 의미 없는 겉치레로 인식되고 있다. 실속은 없고 겉만 번드르르한 허례허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워할 일이 아니라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닌가? 정말 그런 것일까?

이번 여름을 끝으로 정년퇴임을 하면서 퇴임식에 관한 이런저런 말을 듣게 된다. 어느 대학은 코로나 사태로 공식적인 대면 퇴임식을 생략했다고 하고, 또 어느 대학에서는 최소한의 인원만 모여 마스크를 쓴 채 퇴임식을 짧게 치렀다고도 한다. 설령 퇴임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용은 없고 관례에 따라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허례허식처럼 여겨지니, 사라질 때는 소리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미덕이라는 말이 정답처럼 들린다. 어떤 형태의 삶이든 변화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데 굳이 삶의 변화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직장에서 30여 년 동안 동료들과 함께 지내온 삶을 어느 시점에 그만둔다는 것은 쉽지도 않고 간단한 일도 아니다. 의례는 본래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상징적 행위였다. 그래서 통과 의례는 대체로 의식 이전의 삶과의 '분리', 과도기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성'과 의식 이후의 삶으로의 '편입'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 우리의 삶이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안정성을 부여하는 것이 의례의 주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단계가 바뀌면 관계를 맺는 사람과 사물도 달라진다. 늘 걸어가던 길이 달라지고, 하루의 상당 시간을 머물렀던 공간이 달라지고, 마주치거나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달라진다. 간단히 말해 우리의 삶이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반복하는 일상이 급격하게 변화한다. 이러한 일상의 단절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의례가 특정한 행위와 절차를 '반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상징적인 의례 행위를 통해 과거와 미래가 다시 연결되어, 우리는 현재의 삶을 다시 활력 있게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의례가 사라지고 있다. 어느 인류학자의 말처럼 의례의 상실, 공통의 상징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의 소멸이 우리 시대의 가장 진지한 문제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의례는 이제 바람직하지 않은 불편한 말이 돼버렸다. 그것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틀에 박힌 일로 치부될 뿐이다. 현대사회는 이렇게 모든 종류의 형식과 형식주의에 대해 반항한다.

그럼 형식과 껍데기가 사라지고 나면 알찬 내용과 알맹이만 남게 되는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사회는 머무를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유가 없으니 변화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우리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일상의 의식이 되고, 사회의 제도적 의례가 된다. 반복할 일이 없다는 것은 결국 의미 있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껍데기가 없는 알맹이가 부패하는 것처럼, 상징적 형식이 없이는 의미 있는 내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 세대는 가치가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면서 '탈가치'를 추구한다고 한다. 의례와 의식이 없는 사회는 곧 가치와 의미가 없는 사회다. 우리는 과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성숙한 상징적 의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의례’를 잃어버린 사회가 사람들 사이의 기본적 '예의'도 상실할까 봐 두렵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계간『철학과현실』책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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