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꼭대기로 올라갈까요?

 

 

 






749. 타락한 올림픽, 성숙해진 한국체육 - 손봉호
 관리자  | 2021·08·17 11:35 |
이번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가 창궐한 가운데 한 해 연기하여 개최되었는데도 큰 사고 없이 치러졌다. 무관중이라고는 하나 코로나 '방콕' 때문에 역대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중계방송을 통하여 현장에서보다 더 가까이 그리고 더 상세하게 경기를 구경했을 것이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손해를 봤겠지만, IOC는 잃은 것이 거의 없다.

1896년 프랑스 귀족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남작이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를 부활시켰을 때 그가 의도했던 것은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Mens sana in corpore sano)"란 모토가 말하듯이 젊은이들의 몸을 건강하게 함으로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는 것이었다. 경기란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좀 더 재미있게 운동하게 하여 젊은이들이 체육에 더 큰 관심과 열정을 보이도록 하였다. 그래서 20세기 초기까지는 오직 아마추어 경기자만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고, 스포츠 교육자를 포함해서 운동과 관계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경기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순수한 의도는 히틀러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나치 정권의 선전장으로 이용함으로써 흐려지기 시작했고, 냉전 시대에 동독과 구소련이 공산주의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국가가 선수들을 양육시켜 메달을 휩쓸어 감으로써 한 층 더 왜곡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타락은 TV가 보급되어 경기의 중계방송이 가능해짐으로써 이뤄졌다. IOC가 중계방송권으로 막대한 돈을 벌게 되자 ‘건강한 정신’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경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서 시청률을 높이는데 모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거기서 권투와 레슬링을 제외하고는 떼돈을 버는 직업선수도 경기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나라는 선수를 출전시키거나 메달 따기가 어려운데, 직업선수까지 경쟁하게 되자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젊은이들의 평화의 제전이 부자나라들의 돈 잔치로 전락했다. 올림픽 경기 때마다 개최반대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반대 운동을 벌이고 싶었으나, 그때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런 움직임을 전혀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만두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도 올림픽 정신에 충실했다고 할 수 없다. 동독, 구소련, 중국 정도는 아니더라도 국가가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선수들을 훈련시킴으로써 올림픽이 본래 추구했던 이상에 따라 생활체육을 장려한 것이 아니라, 엘리트 선수 양성에 치중해 왔다. 가능한 한 금메달을 많이 따서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올림픽 참가의 주된 목적이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은 16위를 차지해 최근 올림픽에서는 가장 나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과 응원하는 시민들은 역대 어느 경기에서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선 금메달이나 메달 순위에 대해서 국민이나 언론이 이번만큼 안달하지 않고 초연해 본 적이 없었다. 과거처럼 매일 방송뉴스나 신문 첫 페이지에 메달 수나 순위를 보도하지도 않았고, 시민들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4등으로 메달을 놓친 경우가 유난히 많았는데도 그것을 그렇게 안타깝게 생각하거나 엉뚱한 핑계를 대는 일도 없었고, 선수 개인의 성적이 과거보다 좋아진 것으로 만족해했다. 전반적으로 시민이나 선수들은 이기는 것 못지않게 경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과거 어느 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에서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 근대 올림픽이 목적하고 있는 이상에 조금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정부도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생활체육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금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막대한 액수의 포상금을 준다고 한다. 아직도 후진국의 때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 것 같다. 차라리 여자배구 김연경 선수의 이름으로 산불이 난 터키에 묘목을 보낸 것처럼, 안산 선수의 이름으로 활과 과녁이 없어서 양궁 연습을 못 하는 가난한 나라에 우수한 국산 양궁과 과녁을 선물했더라면, 안 선수와 한국의 명예가 훨씬 더 빛났을 것이다.

우리의 체육정책과 체육계 그리고 시민들 모두가 많이 성숙해졌지만, 좀 더 성숙해져야 할 것 같다.

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부산 고신대 석좌교수, 전 동덕여대 총장, 전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전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756   756.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 – 김도식 21·10·12 88
755   755. 재미 한국계 요리사 데이비드 장 이야기 – 김성진 21·10·05 56
754   754. 2022년 대선과 시대정신 - 김기봉 21·09·28 50
753   753. '의례'를 잊어버린 사회 - 이진우 21·09·14 56
752   752. 누가 제일 무서워? - 권병규 21·09·07 288
751   751. 아프간의 대재앙 - 이택호 21·08·31 20
750   750. 어떤 메달의 상징성 - 엄정식 21·08·24 61
  749. 타락한 올림픽, 성숙해진 한국체육 - 손봉호 21·08·17 118
748   748. 운동선수의 학교폭력 - 김도식 21·08·10 16
747   747. 팬데믹과 올림픽 그리고 스포츠철학 - 김성진 21·08·03 16
746   746. 남길 것인가, 사라질것인가? - 김기봉 21·07·27 23
745   745. 2100년 - 권병규 21·07·20 364
744   744. 시너지 효과와 링겔만 효과 - 이택호 21·07·13 24
743   743.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 엄정식 21·07·06 26
742   742. 선한 마음의 전파력 - 김도식 21·06·29 24
741   741. 교통수단의 도덕성 - 손봉호 21·06·22 23
740   740. 과학과 종교 - 김성진 21·06·15 34
739   739. 인공지능 시대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 김기봉 21·06·08 23
738   738. 반지하 - 권병규 21·06·01 356
737   737. 판단중지(判斷中止) - 이택호 21·05·25 53
1234567891038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