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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 엄정식
 관리자  | 2021·07·06 16:00 |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진리’, ‘진실’, ‘진정성’ 같은 표현에 점점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허위나 허구성 같은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횡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보편화되어가는 것은 역시 시대적 특징인 과학기술의 광범위한 적용과 확산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영화나 스포츠 등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와 종교문화, 심지어 전문적인 학문의 영역에까지 예외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막상 진리나 허위, 진정성이나 허구성 같은 것을 구분하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는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혹은 세계관을 지니기가 어렵고, 따라서 그만큼 자기가 자기답게 존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지난 20세기와도 달리 TV, 라디오, 신문 등을 통한 미디어 환경만 구축된 것이 아니라 PC, 인터넷, 더 나아가 스마트 폰의 등장아래 네트워크 시스템 및 모바일 세계로 확장되었다. 이와 같이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었지만, 인간의 공간적 활동제약은 오히려 더욱 축소되었다. 누군가의 소식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는다. 침실에 누워 손가락으로 스마트 폰을 누르면 금방 어디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결국 우리는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자기만의 ‘토끼 굴’ 혹은 감옥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검증할 기회를 잃은 채로 앤드류 포터(Andrew Potter)가 말하는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차선의 방법은 우선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을 모색하는 일이다. 그중에 하나는 존 듀이(John Dewey)가 말하는 이른바 ‘실험적 방법’을 나 자신의 문제에 보편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이다. 현대인의 가치관과 인생관, 세계관 등은 대부분 농경사회나 유목사회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맹목적으로 신성시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따라 취사선택하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거나 개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자연과학을 기술적 전문 분야의 것으로 못을 박는 동시에 과학의 이용을 전쟁이나 상업에 있어서와 같이 개인이나 계급의 이익을 위주로 할 수 있는 분야에만 국한시키는 방향으로 무의식 중에 작용”했다는 점을 그는 『철학의 재구성』에서 특별히 지적한다.

물론 듀이도 과거의 제도나 종교, 도덕에 축적된 경험을 무조건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실험적 방법을 인간의 문제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면, 한 가지 중요한 함축은 우리가 준수하는 원리나 원칙, 혹은 교리나 신조 같은 것이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두 일종의 ‘가설’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것들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신봉했을 때 일어나는 결과를 따라서 검사하고 확인하며 또는 뜯어고쳐야할 지성적 도구”일 뿐이다. 이와 같이 듀이는 물리학자인 리차드 파인만이 실험실에서 탐구에 임했던 자세를 일반인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하버마스가 후에 강조했던 과학적 합리성이 현대인의 생활 세계에 보편화될 것을 이미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소환한다면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에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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