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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 과학과 종교 - 김성진
 관리자  | 2021·06·15 18:12 |
최근에 국내 한 생물학자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종교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생명과 진화에 대한 종교적 관점도 상당 정도 배려하고 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 해당 단원의 일부를 축약 정리해 본다.

과학과 종교의 공통 관심 주제

  과학과 종교는 모두 인간과 자연현상에 대한 근본적 해답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학은 모르는 것도 포함한 모든 현상을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탐구하며 그 결과에 따라 잠정적 해답을 얻는다. 종교는 신앙에 의한 초자연적 존재(신)로 미지의 현상을 해명한다. 그 해답은 궁극적이다. 이처럼 과학과 종교가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음으로 해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마주 보고 있는 생선가게가 어떻게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겠는가?

진영간 대립과 화합 가능성

  많은 철학자, 과학자, 종교가들이 두 진영의 관계를 조명하고 대책을 모색해 왔다. 그 중 하나는 ‘배격론’이다. 두 진영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으므로 상대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전략이다. 근세 유럽에서 벌어졌던 종교재판, 수년 전 까지도 벌어졌던 진화론과 창조론간의 법정 다툼도 그 사례다.
  다음은 ‘화해론’이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각자의 영역에서 상대를 인정하자는 제안이다. 흥미로운 통계 결과가 있다: 1996년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과학자 중 39%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 하였고, 1997년엔 미국인 과학자의 99%가 진화론을 수용한다고 하였다. 이 결과는 신을 믿는 미국 과학자조차도 대부분이 진화론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신과 진화론을 함께 받아들일까? (마이클 셔머, 류운 옮김 『왜 다윈이 중요한가?』 200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10월 23일 교황청 아카데미에서 “새로운 발견들이 우리로 하여금 찰스 다윈의 이론이 단순한 가설 이상의 것임을 인정하게 됐다”고 선언하고(www.cbck.or.kr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즉위 미사 강론) 진화론과 교회의 교리 사이에 갈등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즉위한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미사 강론에서 “우리는 진화의 우연하고 무의미한 산물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사유의 산물입니다.”라고 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하다.
  가톨릭 교회가 진화론을 수용한다고 해서 창조론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몸은 진화를 거쳐 인간이 되었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신이 부여한 것으로 설명한다. 1992년 10월 3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이의 과학적 입장에 대한 종교재판이 보여준 교회의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하였다. 실로 359년 만의 복권이다. 가톨릭 교회가 태양중심설의 명확하고 간단한 과학적 결론을 인정하는데 걸린 세월이다. 비록 매우 늦게나마 종교가 교리에 어긋난다고 해서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끝까지 배척할 수는 없게 되었다.

상호 무관론

  대립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 대책으로서 ‘상호 무관론’도 제기된다. 종교와 과학은 다른 분야이므로 서로 간섭할 필요 없이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는 견해로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종교는 과학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고 오직 인간의 양심, 도덕, 윤리 등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종교에서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추구하는 종교의 목표를 포기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 과학자는 모든 현상(인간을 포함한 자연현상)은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해답을 추구한다. 그러나 과학 지식이 많아질수록 의문은 더욱 늘어나며 복잡해지고 또 난해해진다.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한계의식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 초자연적 절대자에 의지하는 종교에도 고민은 있다. 종교의 교리와 과학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과학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더욱이 과학의 발전으로 신앙에 대한 모순이 점점 확대돼 가는 현실을 해명해야 한다.

잠정적 대안

  이런 상황에서 양자의 입장을 모두 수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의 책을 인용하여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재조명해 본다.

  A를 A 아닌 것으로, 실재를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자연주의를 초자연주의로 만들려하지 않는 한, 신자들은 종교와 과학을 함께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유신론자들에게 가장 논리적으로 일관된 논증은 바로 이것이다. 신은 시간과 공간 바깥에 있다. 다시 말해서 신은 자연 너머에 – 자연을 초월해, 초자연적으로 – 있으며, 따라서 자연적 원인들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신은 과학의 영토를 넘어서 있으며, 과학은 신의 영역 바깥에 있다. 신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있게 하는 것은 믿음이다.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종교관)은 사람마다 다르다. 모든 종교는 이런 신앙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강론, 설교, 또는 설법을 통하여 그들 종교의 정형을 제시하고 지도한다. 규범을 지나치게 벗어나면 이단으로 낙인찍어 제재한다.
  과학과 종교에 대한 태도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경전에 기술된 모든 것을 글자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든지, 석가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든지 하는 것을 믿는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과학으로부터의 비판에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창조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체에 관해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신의 창조의 선물로서 부여 받은 영혼과 정신의 기원에 대해서도 만족할 만한 해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반대편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은 철저한 무신론자들로서 어떤 경우라도 자연법칙으로 해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을 탐구하다 보면 자연 현상의 오묘한 질서와 심오함에 비해 우리의 지적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한 차원 다른 의식 세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 모두 인간의 지적 행위이므로 만일 갈등이 있다면 개개인에게서 발생하는 문제다. 특히 종교는 지극히 개별적(개인적)인 것이어서 각자의 믿는 행위는 천차만별이다. 신에 대한 개념이 사람마다 달라 각자 어떤 수준에서 과학과 타협하는지 알 수 없고 타인이 간섭할 수도 없다. 과학과 종교의 속성이 이러할진대 각 진영은 집단의 이해과계를 개인에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과학과 종교는 집단으로 서로 대립할 것이 아니고 양 진영의 갈등을 개인의 수준에서 해결하도록 허용하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두 진영이 서로 공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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