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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 인공지능 시대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 김기봉
 관리자  | 2021·06·08 11:15 |
인간은 문화라 일컬어지는 자기 자신이 짠 의미망에서 사는 존재다. 현생인류가 자연에 사는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문화의 세계에 살면서 만물의 영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집단학습에서 나왔다. 인간은 종(種) 전체가 연결하여 집단적으로 학습을 하는 지구에서 유일한 유기체다. 정보를 갖고 있는 개인이 죽더라도 정보는 사라지지 않고 집단기억으로 저장되어 다음 세대에 전수됨으로써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를 낳는 것이 집단학습의 장점이다. 동물들은 수많은 세월이 걸리는 유전자 변이로 변화를 일으키지만, 인간은 단기간의  집단학습으로 45억6천 년 동안 어떤 생명체도 못 한 도약을 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여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해가 1903년이다. 그로부터 58년 후인 1961년에 당시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지구를 벗어나는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그가 귀환하여 했던 명언이 “지구는 푸른빛깔이었다.”라는 말이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최대 장점인 집단기억과 집단학습이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이 집단학습을 통해 지난 만 년 동안 축적했던 정보를 ‘새 발의 피’ 정도로 축소하는 빅데이터가 출현하고, 인간 집단학습을 추월하는 인공지능 딥러닝(deep learning)이 등장했다.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다. 알파고가 인간 집단학습 수준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여준 ‘신의 한 수’가 제2국의 37수다. 알파고는 바둑판 변두리에서 안쪽 다섯째 줄에 37수를 두었다. 초반 바둑에서는 바깥쪽 4선이나 3선에 두는 게 정석이다. 이 한 수가 바둑의 역사를 바꿨다. 알파고 설계자인 허사비스는 “바둑은 오래도록 수학자들이 국소 최대점(극대점)이라 부르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다. 알파고는 바둑판 중앙에 가까운 전체의 최대점을 컴퓨터 연산으로 찾아냈다. 이로써 인간 집단학습으로서 바둑 교육은 종말을 고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부가 되고, 바둑은 게임으로 전락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모르는 ‘창조력 코드(creativity code)’를 알아내는 시대에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초중등학교 2022년 교육과정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개정의 초점은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야 하는 미래세대를 어떻게 교육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디지털 이주민이 디지털 원주민을 가르친다는 한계부터 인정하고 교육과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문화를 배우는 역전이 생겨났다. 디지털 원주민인 미래 세대에게 인공지능은 경쟁자인 동시에 동반자다. 그들은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로 진화된 신인류라는 의미에서 ‘포노 사피엔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진화된 신인류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학습의 목표와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평가, 곧 수능시험이다. 대입 수능시험을 볼 때 수험생이 가장 유의해야 할 사항이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규정은 ‘포노 사피엔스’인 그들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난센스다. 그들의 뇌는 스마트폰과 연결돼 있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기억하고 학습하며, 세상과 연결한다.

종래 교육과정개정에서 각 교과에서 논의했던 핵심사항은 결국 교과서의 성취기준 개발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 교과서가 과연 필요할까? 인공지능을 플랫폼으로 해서 세상의 모든 지식과 연결하여 자기 수준에 맞는 맞춤형으로 자기주도 학습을 하는 방향으로 교육의 전면적인 쇄신이 일어나야 한다. 교과서와 교사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하는 인공지능 시대 집단학습의 초기 설정값(default value)부터 고민해야 한다. 요컨대 학생들이 인간과 인공지능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메타버스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에 대한 교육과정의 리셋(reset)이 필요하다.


글쓴이 / 김기봉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계간『철학과현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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