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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 윤여정 - 김도식
 관리자  | 2021·05·04 15:33 |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지난해 '기생충'의 수상에 이어 축하를 받을만한 일이다. 이제 우리 영화계의 수준이 칸이나 베를린 영화제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수상할 수 있을 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니 말이다. 하지만 1976년 몬트리올에서 양정모 선수가 우리나라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땄던 것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그 이후에 우리나라가 획득한 수많은 금메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줄어든 것처럼, 영화계의 잇따른 쾌거도 일반인들에게는 점차 무덤덤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상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윤여정이라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인지하고 있던 영화배우이자 연예인이었지만,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막힘없는 영어로, 때로는 당황스러울 수 있는 질문에도 능숙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며, 그녀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의 수상을 전후로 했던 그녀의 인터뷰는 인간으로서의 성숙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의 증조할머니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미숙함에서 성숙함을 배워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어렸을 때, 다른 사람이 사용한 물로 자신의 몸을 씻는 증조할머니를 보며 더럽다고 느꼈던 그녀는, 어른이 되면서 그런 행동이 자기희생의 발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영화 '미나리'를 찍는 내내 그녀는 자신의 증조할머니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이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아닌데, 그녀는 자신의 부끄러웠던 경험을 성숙함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미나리'라는 의미 있는 영화를 부산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기네 나라의 야구 결승을 'American Series'라고 부르지 않고 'World Series'라고 부르는, 조금은 오만해 보이는 미국 사람들에게 그녀는 겸손이 지니는 미덕을 알려주었다. 수상을 예상했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글렌 클로스(Glenn Close) 같은 배우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라고 대답한 점이나,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작년에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듯이, 함께 후보에 오른 다른 배우들을 언급하며 서로 경쟁 관계가 아니라고 한 점들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에 거침이 없는 미국 사람들에게 다른 가치관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자신의 수상에 대해서 "다른 후보자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말에 청중들이 웃음을 터뜨린 것은 자기중심적인 미국인의 문화와 대비되는 우리의 겸양지덕(謙讓之德)을 보여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 "운이 좋아서 그렇다."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 반면, 미국 사람이 보기에 오스카의 수상과 같이 일생의 가장 큰 업적을 운으로 돌리는 것은 농담으로 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면서 겸손을 가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녀처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하면서 겸손을 드러내는 것은 그녀의 성숙함을 잘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윤여정이라는 사람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탁월한 배우일 뿐 아니라, 성숙한 인간임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그녀가 출중한 배우라는 사실보다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영역에서는 뛰어나지만, 인간성이 뒷받침되지 못한 사람을 자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번 그녀의 수상에 진심 어린 환호와 찬사를 보내게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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