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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 행복의 조건 - 엄정식
 관리자  | 2021·03·30 11:39 |
  새삼스럽게 '행복'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느낌을 준다. 각종 광고 매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구호에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치게 마련인데, 특히 '코로나'라는 재앙을 겪으면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지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웰빙', '참행복' 혹은 '참살이' 등과 같은 표현이 유행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을 깊이 음미해 보면,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복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궁극적 목표로서 자기가 지닌 가능성이 모두 실현된 상태이다. 한편 최근에 이루어진 사회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현대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을 원한다고 한다. 즉 "정의가 지켜지는 평화로운 나라에서 자유롭고 건강하게 장수하면서 사랑을 나누고, 배움과 교육의 기회를 얻고, 충분한 생계 수단을 누리면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최대한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하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거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조건들만 추구하면 그것들이 제대로 충족되기도 어렵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될 수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선 행복은 즐거움을 경험함으로써 확인되는 '심리적 개념'이다. 때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요소를 지니기도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을 통해서 찾아오는 즐거움의 상태인 것이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면, 어떻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즐거움은 반드시 외형적 조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이 아니다. 자기의 즐거움이 좀 더 오래 지속되고 더욱더 넓게 퍼져나가게 될 때의 확장된 즐거움이다. 그것은 "좋은 일을 할 때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윤리적' 개념이기도 한 것이다.

  다음으로 행복은 이성적 존재만이 경험할 수 있는 '합리적' 개념이다. 우리는 일시적 즐거움이나 갑작스러운 기쁨을 경험했다고 해서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삶 전반에 걸쳐서 합리적으로 설계된 것이고, 꾸준한 노력을 거쳐서 이루어낸 즐거움이라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령 복권에 당첨되거나, 이산가족이 갑자기 상봉하게 된 경우, 그것이 불행의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끝으로 행복은 '섭리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성적 존재로서 한 인간이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기 삶의 설계가 대체로 잘 실현되고 있다고 믿을 때 경험하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러한 즐거움이 반드시 노력에 정비례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예측한 대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자연 혹은 신의 섭리와 무관하지 않은 축복의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러한 섭리에 순응함으로써, 해탈이나 구원을 통해 궁극적인 행복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행복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일시적인 쾌락과 구분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환상적이고 화려하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지개'와 같은 그 무엇으로 비유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성숙한 인간, 즉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에 걸맞게 합리적으로 삶을 설계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며, 또한 그 성과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갖출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은 또한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무엇보다 그 '나'로서 '나'답게 '나'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자기를 안다는 것은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것, 즉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를 알고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에게 행복은 삶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적 자아인식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이루어질 때, 불현듯 우리는 자신이 그 '무지개'의 근처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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