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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윤리적 마스크 - 손봉호
 관리자  | 2021·03·23 12:07 |
  며칠 전 한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철저히 도덕적이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의 약점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훨씬 너그러운 인품을 지녀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한다. 특히 매우 담대해서 어지간한 위협이나 위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 앞에서나 할 말은 하고 만다.

  우리가 둘 다 80대 중반이니까 자연히 건강 문제, 특히 코로나19를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 조심하고, 자동차 운전할 때 앞차와 거리를 충분히 두고, 특히 마스크는 꼭 끼고 다녀라"라고 의례적인 당부를 했더니, 그는 의외로 반응했다. "나는 마스크 같은 거 별로 신경 안 써!"라고 한 것이다. 그까짓 것 코로나 같은 것, 죽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그의 담대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아니야. 마스크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껴야 하는 거야!"라고 했더니, 즉시 이해하고는 "아, 그런가? 알겠어!"라고 했다.

  생물학이나 의학에 문외한인 내가 그런 충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정의가 전해 준 자신의 경험과 설명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줄을 모르고 며칠간 환자와 상담하고 약을 처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염된 것이 드러나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지만, 환자나 직원은 한 사람도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했겠지만, 특히 자신이 매우 철저하게 마스크를 착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스크는 감염된 사람이 껴야 효과가 있지, 비감염자가 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마스크가 최고의 백신"이란 말이 있지만, 그 백신은 자신이 감염되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감염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다. 마스크는 "이웃을 위한 백신"인 셈이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얼마나 서로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피부에 와 닿게" 느끼도록 한다. 나는 전염병에 감염되거나, 그 때문에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마스크를 끼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 각국에 코로나19가 저렇게 창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런 자유를 내세우면서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불편하다고 무시하여 무수한 이웃이 감염되고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이웃에 대한 배려보다는 약품인 백신으로 코로나19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밀(J. S. Mill)이 그의 『자유론』(On Liberty)에서 '위해성(危害性)의 원칙(Harm Principle)'이란 것을 제시했는데, "문명사회에서 본인의 허락 없이 힘으로 어떤 사람의 자유에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스크를 끼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면, 그것을 끼지 않을 자유는 제한받는 것이 마땅하다. 비록 법적으로 강제는 못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지키도록 고취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지금 마스크를 끼는 것은 윤리적 임무다.

  이런 원칙은 물론 마스크나 거리두기에만 국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현대인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이 살고 있다. 긍정적인 영향은 걱정할 이유가 없지만, 코로나19처럼 나의 행동이 이웃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는 경우는 매우 걱정해야 한다. 그 결과가 중대하고 인과관계가 필연적인 경우는 법적으로 제재를 받아야 하고, 개연적이고 경미한 경우는 자발적으로 자제하는 것이 건강한 시민의 윤리적 임무라 할 수 있다. 현대처럼 복잡한 사회에서는 단순히 혼자서 깨끗하고 정직한 것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간접으로 다른 사람과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윤리적이다.

  사실 코로나19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위협은 바로 지구온난화다.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피해와 피해자들이 생겨났지만, 앞으로 더 많고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스웨덴의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지금의 어른 세대는 다음 세대의 "꿈을 훔치고" 있는 것이다. 꿈을 훔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과 그 후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촘스키(N. Chomsky)가 암시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존과 생활에 필수적인 목적 이외에 소비하는 모든 화석연료 에너지는 후손들의 생명과 안정을 파괴하는 것이고, 따라서 비도덕적이다. 특히 OECD에서 온실가스 증가 1위를 차지하면서도 재생에너지 생산에서 꼴찌인 한국에서는 아직도 온실가스를 풍풍 내뿜는 대형 승용차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으니, 과연 이 나라가 인류사회에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국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우리 언론들이 기후문제를 좀 많이 취급하고는 있지만, 우리의 전형적인 약점인 NATO(No Action, Talk Only)로 끝날 것 같아 걱정된다.

  코로나19는 27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가져다주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힐 것 같다.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렀으니, 어떤 교훈이라도 하나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서로를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과 안전도 보장될 수 없음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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