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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 행복의 조건 - 엄정식
 관리자  | 2020·05·19 11:48 |
  경남 창원에서 노점상으로 근근이 생활하던 부부가 작년 1월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 결혼 20년 차인 이 50대 부부에게 7억 8,000만 원이라는 거액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행운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은 것 같다. 로또 당첨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진 남편의 지나친 폭언과 무시에 아내가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창원지법 형사2부는 부부싸움을 하다가 둔기로 남편의 머리를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이 여인에게 지난 7일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전해진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존엄한 생명을 빼앗은 점, 부부의 인연을 맺은 배우자를 살해해 법적·도덕적 책무를 원천적으로 파괴한 점,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받은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워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일시적 즐거움을 주는 행운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복권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얻는 것은 자기의 전반적 인생 계획과는 생소한 것이어서 좀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타율적 행운의 소산일 뿐만 아니라, 총체적 자아의 실현을 통해 얻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자기가 택한 삶의 유형에 성공적으로 흡수될 때 행복의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여건들이므로 이 사건의 경우처럼 오히려 불행의 불씨가 될 확률이 더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단순히 행운의 선물만은 아니며, 자기가 택한 유형의 삶을 합리적으로 이끌어갈 때 얻어지는 노력의 산물이다. 롤스(John Rawls)는 이 점을 그의 『사회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은 (어느 정도) 유리한 조건 밑에서 세워진 인생의 합리적인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동안에, 그리고 자기의 의도가 실현될 수 있다고 무리가 없이 확신할 때 행복해진다." 물론 우리는 인생 전반에 걸쳐서 완벽하게 합리적인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사회 자체가 급변하고 있고, 불과 몇 년 후의 사태를 예견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그러한 계획을 세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여전히 합리적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자기의 소망을 능력에 따라 계획성 있게 성취해 나가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롤스에 의하면 어떤 계획이 합리성을 지니려면 "관련된 사실들을 충분히 의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한 후에 선택된 조건을 충족시킨 경우"이어야 한다. 매우 유동적일 뿐만 아니라,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에서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진정한 의미로 행복한 사람이 드물기 마련이며, 대부분은 감각적 쾌락에 자신을 던져버리려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대신, 반칙을 범하거나 요행을 바라기도 한다. 반칙을 범하는 부류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고, 요행을 바라는 부류에는 갖가지 유형의 기복 신앙에 의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로또에 당첨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이 많을수록 현대사회는 더욱 불안해지고 현대인은 행복으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려고 급급해하기보다는 우선 불행을 멀리하도록 애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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