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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코로나19가 바꾼 것에 대한 단상(斷想) - 김기봉
 관리자  | 2020·04·21 13:57 |
  인생은 연극일까, 영화일까?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뜻대로 하세요>에서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라고  썼다. 연극적 삶은 일회적이고 사라진다. 그래서 인생은 한바탕 꿈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아무리 슬픈 일도 모두 지나가고, 남는 것은 기억과 추억뿐이다. 죽는 순간에 삶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죽음과 함께 완성되는 인생 영화를 보는 관객이 되어 생을 마감한다.

  죽을 때까지, 나는 매 순간 찍는 영화의 장면들을 기억의 파일로 뇌라는 컴퓨터 안에 저장하면서 산다. 나는 그 영화의 주인공이면서 감독이고,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관객이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국 내가 어떤 인생의 영화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이런 인생영화 제작법을 위한 모토가 "인생을 영화처럼, 영화를 인생처럼"이다.

  연극배우처럼 날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멋진 인생영화의 장면들을 촬영하기 위해 언제나 지금을 사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삶을 살 것인가? "Anything goes(뭐든지 괜찮다)." 그동안 나는 강단에서 연극을 하듯이 강의를 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대면 강의를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개학은 했지만, 개강은 할 수 없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연극인에서 영화인으로 전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제공하지 않는 대학과 강의를 하지 않는 교수는 존재의미가 없다. 코로나19가 오프라인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바꾸는 4차 산업혁명을 단번에 관철시켰다.

  "가장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 강단에서 강한 교수가 아니라, 카메라에 잘 적응하는 교수가 이번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처음엔 강의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렸다. 학생들은 그 동영상을 아무 때나 어디서든 영화처럼 볼 것이다. 그걸 찍은 나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영화다. 졸작임을 나 자신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다 정말로 한 학기 내내 강단이란 무대에 서지 못하고, 매주 삼류 영화를 찍어 올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몇 주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영화를 연극처럼 찍자. 이런 발상의 전환을 『철학과 현실』 여름호를 위한 영상 편집회의 덕분에 했다. 대면 편집회의를 할 수 없기에 ZOOM으로 원격회의를 했는데,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래, ZOOM으로 실시간 화상수업을 하고 기록은 남기지 말자. 그러면 영화를 연극처럼 찍으면서 학생들과 쌍방향으로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꿈은 이뤄졌다. 이제는 카메라 앞에서 하는 수업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내가 초대자가 되어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지배욕까지 생겼다. 다행인 것은 학생들 반응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신입생의 만족도가 높았다. 막상 대학은 들어왔는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조차 열리지 않아서 학과 교수들을 만나지 못한 신입생들이 영상으로나마 서로를 볼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하며, 그런 자리를 마련해준 나에게 고맙다는 문자도 보냈다.

  아, 정말로 위기가 기회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언제까지 인간이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해질 것인가? 앞으로 세상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눠질 거라고 전망한다. 이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나래를 펴고 숙고해 보아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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