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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조국 사태'와 자유민주주의 위기 - 김기봉
 관리자  | 2019·11·12 15:19 |
  '조국 사태'는 한국 사회를 두 동강 냈다. 어느 모임을 가든 '조국'은 친구와 적을 나누는 코드로 작동했다. 이렇게까지 나라가 갈라진 적이 있었을까? '조국 사태'에 대한 담론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이데올로기보다도 더 강력한 전선을 형성했다. '조국 사태'는 지난 8월에 시작해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내내 한국 사회를 거의 내전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는 조국 장관이 사퇴하는 것과 함께 끝났고, 한국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가? 그렇지 않고 조국 장관 없는 '조국 사태'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조국 사태'의 본질은 전자의 '조국'이 아니라 후자의 '사태'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사태'가 심각한 이유는 조국 교수 개인과 그의 가족 및 주변의 비리 의혹이 중대 범죄에 해당하기보다는, 그동안 세계에서 유례없이 성장했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촛불 혁명'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룩한 성과였다면, '조국 사태'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중병에 걸렸다는 징조다.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국회는 작동 불능이고, 이런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서 행정부 내 법무부 소속 검찰의 권력은 커질 대로 커지고, 시민들은 거리와 광장으로 몰려나와 정치적 행위를 한다. 이전의 촛불 집회의 연장인 동시에 안티테제로 벌이는 거리와 광장 정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반길 일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파시즘을 초래하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 원리 및 입헌주의 정부형태를 지칭한다. 그것이 인류가 발명한 가장 좋은 정치체제라는 걸 입증하는 계기는 1989-1990년의 현실사회주의 몰락이다. 그 당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는 인류 역사 진화과정의 완결이라고 선언하는 책까지 썼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했다. 자유민주주의가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을 때는 체제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적들이 사라진 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발생했다.

   과연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어느 한도까지 허용할 수 있으며, 자유주의는 민주적일 수 있는가? 시민이 지배권을 갖는 정치제제인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 시대부터 있었다. 아테네에서 폴리스의 일원인 시민의 자유는 공동체의 이익, 곧 공공선(commonwealth)에 이바지하는 범위 내에서만 향유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본래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보는 자연법사상에 근거해서 정립된 근대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지킬 목적으로 사회계약에 근거한 국가를 성립시켰다.

  이런 근대 자유주의에서 문제는 각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고 확대하려 하면 할수록 서로 간의 갈등은 증대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것을 해결하고 조정해야 하는 국가의 권력은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종래 한국 사회의 민주화운동은 국가권력에 대항해서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만인의 만인에 대한 그리고 계층, 성, 세대 등의 집단과 집단에 대한 갈등과 투쟁은 심화됐다. 하지만 국가 권력은 민주화과정에서 정당성이 훼손되어 그것들을 조정할 권위를 상실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쟁점을 정치적 합의가 아닌 거리와 광장에서 집회와 시위로 해결하려는 세력이 기승을 부린다. 요컨대 '조국 사태'에서 궁극적인 문제는 검찰 개혁도 아니고 문재인 대통령의 퇴진도 아니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가 죽느냐 사느냐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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