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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 '조국 사태'와 한국사회의 미성숙 - 김기봉
 관리자  | 2019·09·17 11:51 |
  과일은 시간이 흐르면 성숙해지지만, 인간은 어른이 돼도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이런 인간의 미성숙을 화두로 삼고 계몽의 기치를 든 철학자가 임마누엘 칸트다. 그는 계몽이란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했다.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이란 지성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인 지성을 사용할 결단력과 용기를 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성숙한 인간은 자기가 세운 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규제할 줄 아는 자율성(autonomy)을 가진 사람이다. 이렇게 인간을 자율적 의지를 가진 주체로 세운 것이 근대를 혁명의 시대로 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기점이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지동설을 주장하는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On the revolutions of the heavenly spheres)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revolutionibus는 '회전'을 의미한다. 지구가 '회전'한다는 주장 자체가 혁명이었다. 감히 알고자 하는 용기를 가진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이로부터 혁명의 시대인 근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혁명을 통해 인간은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계몽을 했고, 스스로가 세운 도덕법칙에 따르는 자율적 존재가 됐는가? 프랑스혁명은 테러를 낳았고 공포정치를 초래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은 인간의 자율성을 부여하기는커녕 억압했고 국가권력을 강화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혁명 그 자체인가, 혁명을 일으킨 사람 탓인가?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까지 버릴 순 없다." 다시 말해,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되돌릴 순 없다. 프랑스혁명의 악덕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자유, 평등, 우애라는 인류 보편이념을 세운 건 분명 역사의 진보다. 혁명은 급격한 변화이고 전복이다. 문제는 무엇을 변화시키고 전복할 것이냐다.

   얼마 전 6월 13일부터 9월 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혁명, 그 위대한 고통-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전시회가 열렸다. 미술사에서 결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가 19세기 사진의 발명이다. 사진의 출현과 함께 실재의 모방으로서 그림의 존재의미가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 앞으로 화가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 20세기 현대미술은 이 물음에 대한 고뇌로부터 출발했다. 이 고뇌로부터 그림을 형성하는 두 요소인 색과 형태를 파괴하는 미술사의 혁명이 일어났다. 먼저 세상의 색채를 바꾼 혁명가들은 야수파라고 불린다. 그들은 하늘을 하늘색으로, 인간의 살을 살색으로 그리지 않고 원색을 사용했다. 본 것을 그린 게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와 더불어 입체파는 세상의 형태를 바꾸는 혁명을 일으켰다. 사물을 입체적으로 모든 각도에서 보는 관점의 전환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해내는 그림을 그렸다.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는 말했다. "야수주의가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수주의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결국 모든 것의 정답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기에 혁명적이었다. 이렇게 감히 알고자 하는 물음을 던질 때 미성숙에서 탈피하는 계몽을 통한 혁명이 가능할 수 있다.

   촛불혁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가장 소리높이 외쳤던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사람의 이중성을 통해 한국사회의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제는 무엇을 감히 알고자 해야 하는가? 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개혁을 밀어붙일 순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회가 자동적으로 성숙해지진 않는다. 적폐청산이 아니라 미성숙이 문제다. 적폐청산이 남을 겨냥하는 창이라면, 미성숙에 대한 반성은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좌파든 우파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금수저든, 흙수저든, 지식인이든 일반인이든, 우리 모두가 미성숙한 탓으로 "나라다운 나라"가 못되고 있다는 성찰을 할 때, 한국사회 성숙을 위한 불씨가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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