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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 휴우머니스트 장기려 박사의 청십자의료보험조합 - 김성진
 관리자  | 2019·07·30 16:34 |
  '휴우머니즘'(humanism)은 흔히 인본주의(人本主義), 인도주의(人道主義) 또는 인문주의(人文主義)로 해석되지만, 의미의 폭이 워낙 넓어서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삶의 현장에서, 또는 자신의 직업이나 사회활동 영역에서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게 되면, 우리는 그를 '휴우머니스트'라고 부른다. 한 예로서 성산(聖山) 장기려(張起呂) 박사를 회고해 보자. 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렀을까?


                                                - 6·25동란과 월남 이산가족 -

  장기려 선생은 1911년 평북 용천 출생이며, 1932년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외과의사 백인제의 제자로서 수련하였다. 1940년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 후 귀국하여 1947년부터 김일성종합대학의 외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북한에서 의사로서 우대받았고, 심지어 김일성은 자신의 맹장 수술을 그에게 맡겼다는 말도 있었지만, 실제 집도의는 러시아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그 역시 의사 본분에 따라 부상 인민군을 치료하다가, 국군의 평양 수복 이후에는 국군을 치료했다. 1950년 12월 중공군 개입으로 국군이 평양에서 철수하게 되자, 그는 먼저 차남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으며, 곧이어 다른 가족들도 월남하기로 계획했으나, 어쩐 일인지 다른 가족은 월남하지 못했고, 결국 가족과 45년간의 이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월남 직후인 1951년 1월 이후 선생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육군병원에 근무하였고, 서울대 의대 외과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부산 제3영도교회 창고에 천막복음병원을 설립하여 피난민 등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 진료하면서 1976년 6월까지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서 인술을 베풀었다. 후에 고려신학교와 복음병원은 통합되고, 1956년 송도 언덕배기에 3개 동 신학교와 1개 동 병원을 신축하였으며, 오늘날의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복음병원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간암 환자의 간 설상절제수술(1943년), 그리고 간암 환자의 간 대량절제술에 성공하였다(1959년). 그는 간의 혈관과 미세구조 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1974년 한국간연구회 창립을 주도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하였고, 대한외과학회 회장도 역임하였다.


                                           - '청십자병원'과 '청십자 의료보험조합' -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천막병원을 열고 피난민을 치료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장기적으로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든다. 이것은 전 국민 의료보험이 정착되기 이전의 21년 동안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로 평가받는다. 그는 조합의 설립 목표를 이렇게 잡았다: '가난한 환자를 구제하고, 조합원 서로가 돕고, 질병과 경제적 부담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사회를 만든다.'

  당시 장기려 박사는 농촌운동가 채규철 선생, 그리고 사회복지사 김영환 선생에게서 서구 의료보장제도를 소개받았으며, 그 명칭도 기독교 정신으로 시작된 미국의 '청십자운동(Blue Cross Movement)'에서 착안하였다. 우선 부산지역 성경 연구 모임인 '부산모임'에서 의료보험조합의 취지를 설명하고, 부산 시내 100여 교회에 취지문을 보낸 결과, 23개 교회가 참여 의사를 밝힘으로써, 1968년 5월 13일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 설립되었다.

  당시 담배 한 갑이 100원이었음에 비해, 보험료는 1인당 60원으로 책정되었지만, 경제적 부담보다는 의료보험에 대한 낮은 인식과 경험 부족 등이 가입자 모집이 어려운 이유였다. 실무진이 가가호호 방문하여 보험의 취지를 설명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소식지 '청십자 뉴스'를 만들어 조합원 가정에 발송하는 등 홍보 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조합 발전에 현실적으로 크게 기여한 사건은 조합 직영병원인 '청십자병원'을 1975년 8월에 개원한 것이다.  

  "대지 100평, 건평 200평의 병원 건축에 5,000만 원 정도가 들었어요. 스웨덴 아동구호연맹에서 절반을 지원해 주었고, 나머지는 조합에서 조달했어요. 조합원들은 '내 병원'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진료비를 감액해주기도 해서 재정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산 청십자의료보험의 성공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서울, 광주, 인천, 수원, 제주, 대구 등 다른 곳에서도 지역 의료보험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해 조합 형태로 운영되었으나, 부산에서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고 한다.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받는 인간을 도와줌으로써 이웃사랑 실천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던 휴우머니스트 장기려 선생은 '바보 의사'라는 별명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환자들의 치료비를 자기 월급을 가불해서 대납해 주거나, 치료비도 약값도 없는 가난한 환자를 몰래 도망가도록 병원 뒷문을 열어주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5년 성탄절에 85세로 임종 직전에 그는 자기 비석에 이렇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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