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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 사실과 해석 - 권병규
 관리자  | 2019·05·28 10:52 |
여행 중 비행기가 회항한 적이 있다. 뒷자리에 탄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회항한 비행기는 재급유를 위해 공항에 장시간 머물러야 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비행기 안에서는 승객들의 동요, 항의, 고함이 있었다. 귀국 며칠 후 같은 비행기에 탔던 어떤 유명 인사가 동 회항에 대해 언론에 기고한 글을 접했다. 기고문에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회항한 항공사의 희생과 배려에 대한 칭찬과 아무런 동요 없이 침착했던 승객들에 대한 칭찬이 함께 담겨있었다.

같은 비행기에 탔지만, 그 안에서 있었던 사실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분이 탔던 자리 주변은 동요가 없었을 수 있다. 또는 항공사의 요청으로 광고성 글을 작성했을 수도 있다. 또는 글쓴이가 비행기 내에서 인내심을 소진한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인내했던 사람들을 칭찬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실제 있었던 하나의 회항 사실은 누군가의 말이나 글에 의해서 사건이 될 수도 있고, 미담이 될 수도 있다. 글쓴이가 특정 사실을 선택하고 주관적 해석을 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한참 지난 후 그 모임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완전히 복기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즐거웠던 모임'과 같은 일반적 해석으로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이는 기억의 한계에 기인한다. 오랫동안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일기를 쓰다 보니 시적 여백이 없는 산문으로는 미묘한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언어의 한계 때문이다.

이렇듯 사실의 선택, 주관적 해석, 기억의 한계, 언어의 한계 등으로 인해, 타인의 말이나 글을 통해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SNS의 발전은 사실의 발견에 도움이 된다. 작성자가 중간의 해석자를 거치지 않고 구독자에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SNS로 인해 가짜뉴스 같은 왜곡된 사실이나 편향된 해석이 더 많은 유통채널을 가지게 된 측면도 있다.

최근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정반대의 해석으로 정쟁을 벌여 국회가 마비되고, SNS에 각종 음모론이 퍼지는 것을 보면, '해석의 전쟁'을 보는 듯하다. 사실이 잠든 사이에 해석이 싹을 틔우는 것이다. 해석의 전쟁에서 최종 승자는 사실의 망치로 왜곡된 해석이라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부수는 자가 될 것이다. 쏟아지는 주장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정한 사실이고, 무엇이 주관적 해석에 불과한지를 예리하게 구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타인에 의해 조작된 해석의 동굴로부터 벗어나 세상의 진실을 똑바로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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